[태일루의 시선] 기후위기는 기술이 아니라 정치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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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바꾼 안 이달고의 실험, 그리고 한국의 에너지 전환
10월 27일,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에서 그랜덤 연구소(Grantham Institute)가 주최한 연례 강연이 열렸다. 연단에는 지난 3월까지 12년간 파리 시장을 지낸 안 이달고(Anne Hidalgo)가 섰다. 강연의 제목은 '저항에 맞선 진보(Progress in the Face of Pushback)'. 기후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정치적 저항과 이를 극복한 경험이 주제였다.
이달고가 소개한 파리의 변화는 구체적이었다. 600여 개 공립학교 가운데 300곳 이상에서 주변 도로를 보행자 중심으로 전환했다. 자동차가 차지했던 공간은 아이들의 안전한 통학로와 녹지로 바뀌었다. 지난 20년간 도시의 교통량은 40% 이상 감소했고 대기오염도 크게 개선됐다.
그러나 이날 강연에서 더욱 주목할 대목은 정책의 성과보다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겪은 정치적 저항이었다. 이달고는 취임 초기 자동차 제조업체 최고경영자로부터 기후정책의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정치적 평판을 훼손하겠다는 위협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산업계의 반발과 언론의 비판 속에서도 정책을 관철했다는 설명이다.
파리의 변화는 단순한 교통정책이 아니다. 자동차에 내주었던 도시의 공간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정치적 결정이었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주장한 '도시에 대한 권리'를 떠올리게 한다. 도시는 자본과 행정의 효율성만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삶의 터전이라는 사유다. 자동차보다 보행자를, 교통의 효율보다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우선한 이달고의 정책은 이러한 철학의 실천으로 읽힌다.
물론 변화에는 비용이 따른다. 자동차 통행 제한은 운전자와 상인들에게 불편을 초래하고, 대중교통이 부족한 외곽 주민들에게는 새로운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기후정책은 환경적 성과뿐 아니라 그 비용과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도 따져야 한다.
이날 토론에서 강조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 바로 그 문제다. 대기오염은 모든 시민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피해는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일수록 오염된 환경에 노출되기 쉽고 이를 회피할 수단도 부족하다. 깨끗한 공기는 부유한 사람들의 선택적 소비재가 아니라 모든 시민의 권리여야 한다.
이달고는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민 참여도 강조했다. 무작위로 선정된 100명의 시민이 주요 정책을 논의하는 시민 의회가 대표적이다. 정치적 신념만큼 중요한 것은 시민의 동의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모든 반대에 굴복한다면 변화는 불가능하지만, 모든 반대를 무시한다면 그것은 리더십이 아니라 독선이다. 필요한 것은 방향에 대한 확신과 과정에 대한 민주적 정당성이다.
이러한 논의는 한국의 에너지 전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약속하지만 전력망 확충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출력제어에 따른 손실은 발전사업자가 감수하고, 제도 변경의 불확실성도 상당 부분 민간에 전가된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공익을 위해 투자를 요구하면서 정작 그 비용과 위험을 특정 집단에 떠넘긴다면 이를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파리의 도로와 한국의 전력망은 서로 다른 문제지만 공통된 질문을 던진다. 기존의 이해관계를 바꾸는 과정에서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가. 기후정책은 필연적으로 저항을 불러온다. 그러나 정당한 우려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저항은 구분해야 한다. 정치의 역할은 그 갈등을 외면하지 않고 공정하게 조정하는 데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할 기술은 이미 상당 부분 확보되어 있다.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저장장치와 전기차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기술이 아니다. 물론 기술 혁신과 기반시설 확충은 계속 필요하다. 하지만 기술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것이 사회에 정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결국 기술을 사회적 변화로 연결하는 것은 정치의 역량이다.
이날 이달고의 강연은 파리의 성공담이라기보다 변화의 정치학에 관한 이야기였다. 기후정책에는 기득권의 저항을 감수할 용기가 필요하다. 동시에 시민의 동의를 구하고 전환의 비용을 공정하게 나눌 책임도 따른다. 기후위기를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우회할 수는 없다. 오히려 기후위기가 심각할수록 민주주의는 더욱 정교하게 작동해야 한다.
기후정책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탄소를 줄였는가에만 있지 않다. 그 과정에서 누구의 삶이 나아졌고, 누구의 권리가 회복됐는지도 함께 물어야 한다. 기술은 변화의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결국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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