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루의 시선] 매뉴얼은 있지만 알려주지도 않고 작동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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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전환, 어느 한쪽의 희생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친환경 에너지 웹진에서 일하면서 적지 않은 제보를 받는다. 대부분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의 하소연이다. 사업 과정에서 겪는 불편과 불합리한 제도에 대한 불만이 주를 이룬다. 물론 모든 주장이 타당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이해관계만 앞세우거나 제도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관련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업무 처리에 관한 하소연만큼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비슷한 문제가 반복해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 발전사업자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한국전력에 전신주 인입 공사비를 납부했지만 정작 공사가 언제 진행되는지 안내받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사업자는 공사 일정에 맞춰 후속 작업을 준비해야 하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전체 사업 일정에 차질을 빚었다고 한다. 비용을 청구하고 수납하는 절차는 명확하지만 정작 공사 일정을 안내하고 사업자의 계획을 지원하는 절차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셈이다.
한국에너지공단의 발전설비 확인 업무도 마찬가지다. 최근 국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 설비확인에 소요된 평균 기간은 57.9일에 달했다. 규정상 처리기간을 훌쩍 넘긴 것이다. 발전설비 확인이 늦어지면 REC 발급과 판매 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발전사업자에게 시간은 곧 비용이다. 금융비용은 하루도 빠짐없이 발생하지만 행정 절차가 지연된 데 따른 부담은 고스란히 사업자의 몫이다.
이들 사례에는 공통점이 있다. 매뉴얼은 존재하지만 사업자에게 충분히 안내되지 않거나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공기관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업무를 처리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사업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절차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일정과 결과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행정은 정상적인 사업 환경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욱 답답한 것은 정부의 정책 방향이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강조하면서도 발전사업자들에게는 끊임없이 가격 경쟁력을 요구한다. 최근 RPS를 대체할 계약시장 도입 과정에서도 재생에너지 조달비용을 낮추겠다는 목표가 전면에 등장했다. SMP를 비롯한 발전사업자의 수익구조에 대한 가격 인하 압박 역시 같은 맥락이다.
물론 재생에너지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목표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비용을 낮출 수 있는 사업 환경을 조성하기보다 사업자에게 낮은 가격을 먼저 요구한다는 데 있다. 계통 접속은 지연되고 행정 절차는 불투명하며 금융비용은 사업자가 감당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판매가격만 낮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먼저다.
이 와중에 한국전력의 성과급 논란까지 불거졌다. 국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한전은 2022년부터 올해 9월까지 임직원에게 8,032억원이 넘는 성과급을 지급했다. 지난해 말 부채비율은 여전히 444%에 달했고 5년 연속 재무위험기관으로 지정됐다. 그럼에도 정부 경영평가에서는 2년 연속 A등급을 받았다.
물론 한전의 경영실적이 개선됐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대규모 적자에서 벗어나 흑자로 전환한 것도 분명한 성과다. 성과급 지급 자체를 무조건 비난할 일도 아니다. 다만 송전망 구축 지연으로 발전사업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현실에서 국가기간망 적기확충 지표가 만점을 받았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공기업의 성과는 재무제표뿐 아니라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과 기업이 체감하는 결과로도 평가받아야 한다.
발전사업자에게는 효율과 경쟁을 요구하면서 공공기관의 행정 지연과 비효율에는 관대한 구조라면 공정한 시장이라고 할 수 없다. 발전사업자 역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그 경쟁은 투명한 정보와 예측 가능한 행정, 합리적인 계통 접속 환경이라는 최소한의 조건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에너지 전환은 정부나 공기업만의 사업도 아니고 민간 발전사업자만의 책임도 아니다. 정부는 제도를 설계하고 공기업은 기반을 제공하며 민간은 투자와 위험을 감수한다. 어느 한쪽이라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전체 시스템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진정한 발전은 함께 발전하는 것이다. 공기업의 경영성과와 정부의 정책 목표가 민간사업자의 일방적인 희생 위에서 달성된다면 그것은 지속 가능한 성과가 아니다. 당장의 비용 절감은 가능할지 몰라도 결국 투자 위축과 산업 생태계의 약화라는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올 것이다.
거창한 지원책에 앞서 약속한 절차를 지키고 일정을 투명하게 알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매뉴얼이 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 매뉴얼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가 하는 문제다. 재생에너지 산업이 필요로 하는 것은 특별한 대우가 아니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는 정상적인 사업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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