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루의 시선] 태양광은 민간이 키웠다…간헐성 해법 ESS도 ‘돈 되는 투자’로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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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ESS·유연접속 확대에도 민간투자 유인은 부족
출력제어 늘수록 발전사업자 손실…잉여전력 저장으로 돌려야
ESS 가중치·시간대별 보상 등 계통 기여에 인센티브 필요
태양광 발전의 가장 오래된 약점은 간헐성이다. 해가 뜨면 발전하고 해가 지면 멈춘다. 구름이 지나가도 출력이 달라진다. 필요에 따라 발전량을 조절할 수 있는 화력발전과 달리 기상조건과 시간에 따라 생산량이 결정된다. 태양광 비중이 낮을 때는 전력계통이 다른 발전원을 조정해 변동성을 흡수할 수 있지만 설비가 빠르게 늘어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특정 시간에 발전량이 집중되면서 계통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간헐성 자체를 태양광 확대의 한계로 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특정 시간에 몰려 생산되는 전력을 전력계통이 얼마나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다. 전력이 남을 때 저장하고 부족할 때 다시 공급할 수 있다면 태양광의 변동성은 상당 부분 관리 가능한 문제가 된다. 결국 재생에너지 확대의 다음 단계는 발전설비를 얼마나 더 설치하느냐를 넘어 생산된 전력을 얼마나 저장하고 필요한 시간으로 옮길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에너지저장장치(ESS), 유연접속, 마이크로그리드, 지능형 배전망 등을 추진하고 있다. 대규모 ESS를 중앙계약시장을 통해 확보하고 계통포화지역에는 배전망 ESS를 설치하는 방안도 진행 중이다. 기존 전력망의 여유용량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출력제어를 조건으로 신규 발전소 접속을 허용하는 유연접속도 확대하고 있다. 발전설비 보급에 집중했던 정책의 무게중심이 계통과 저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셈이다.
계통이 못 받는 전기, 결국 발전소를 멈춘다
문제는 태양광 확대 속도와 이를 받아들일 전력망과 저장설비 확충 속도가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송배전망이 생산된 전력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전력수요보다 발전량이 많으면 계통운영자는 발전기의 출력을 낮춰야 한다. 이른바 출력제어다. 태양광 발전소 입장에서는 햇빛도 충분하고 발전설비에도 문제가 없지만 계통 사정 때문에 발전을 멈춰야 한다.
출력제어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문제이기도 하다. 국내 태양광 발전소 상당수는 개인 발전사업자와 농민, 중소기업, 법인 등 민간자본으로 건설됐다. 토지와 모듈, 인버터에 자기자본을 투자하고 금융기관 대출을 활용해 발전소를 지은 사업자에게 발전량은 곧 매출이다. 계통 사정으로 발전을 멈추면 그 시간 동안 생산할 수 있었던 전력과 이에 따른 수입도 사라진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사업자가 발전소를 건설할 때 예상했던 수익률과 실제 수익률 사이의 차이도 커진다. 특히 계통이 취약하거나 재생에너지가 밀집된 지역에서는 동일한 설비와 비슷한 일사량을 갖고도 어느 지역에 발전소가 있느냐에 따라 실제 판매할 수 있는 전력량이 달라질 수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필요한 전력망과 저장설비가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출력제어에 의존한다면 전력시스템이 부담해야 할 비용의 일부를 민간 발전사업자가 발전량 감소라는 형태로 떠안게 되는 셈이다.
유연접속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기존 전력망에 여유가 부족하더라도 필요한 경우 출력을 제한하는 조건으로 신규 태양광의 접속을 허용하면 장기간 이어지는 계통접속 대기를 줄일 수 있다. 당장 송배전망을 새로 건설하지 않고도 기존 설비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저장설비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접속용량만 늘리면 발전소는 더 많이 연결되지만 전력이 몰리는 시간의 출력제어 가능성 역시 높아질 수 있다.
결국 유연접속과 ESS는 별개의 정책이 아니다. 더 많이 접속시키려면 더 많이 저장할 수 있어야 한다.
버릴 것인가, 저장할 것인가
ESS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출력제어가 전력이 남을 때 발전을 멈추는 방식이라면 ESS는 그 전기를 버리지 않고 다른 시간으로 옮기는 수단이다. 한낮에 계통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태양광 전력을 배터리에 저장하고 저녁 전력수요가 증가했을 때 다시 공급하면 같은 발전설비에서 생산된 전력의 활용도를 높이면서 계통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저장설비가 충분해지면 태양광의 가치도 달라진다. 한낮에 생산되는 전력을 그 시간의 수요에 맞춰 소비해야 한다는 제약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낮의 태양광을 저녁 전력으로 이동시킬 수 있고 출력제어 대상이 될 전력도 새로운 공급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ESS는 단순히 태양광 발전소 옆에 설치하는 배터리가 아니라 발전시간과 소비시간의 불일치를 조정하는 전력계통의 유연성 자원인 셈이다.
해외에서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BESS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의 BESS 신규 설치량은 2025년 51GWh에서 올해 67GWh, 2027년 85GWh로 늘어난 뒤 2030년에는 130GWh 수준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5년 사이 2.5배 이상 확대되는 규모다. 미국 신규 발전설비의 상당 부분을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면서 저장설비 역시 발전설비 확대와 함께 성장하는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한국 역시 태양광과 ESS를 별개의 산업으로 바라보는 접근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태양광을 먼저 설치하고 계통이 막히면 출력을 제어한 뒤 문제가 심각해지면 다시 정부가 ESS를 설치하는 방식은 사후 대응에 가깝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계속 높아진다면 발전설비와 송배전망, 저장장치를 처음부터 하나의 전력시스템으로 바라보는 접근이 필요하다.
태양광은 민간이 키웠는데 ESS는 누가 투자하나
여기서 한국 태양광 시장의 특성이 중요해진다. 국내 태양광은 대형 발전공기업이 발전소를 일괄적으로 건설하면서 성장한 산업이 아니다. 개인과 농민, 중소기업, 법인 등 수많은 민간 발전사업자의 투자가 전국에 분산되면서 시장을 키웠다. 정부는 제도와 시장을 만들었고 경제성을 확인한 민간자본이 실제 발전설비에 투자하면서 보급이 확대됐다.
반면 간헐성에 대응하는 ESS 정책은 정부와 계통운영자가 필요한 저장용량을 정해 대규모 설비를 확보하는 방식에 상대적으로 무게가 실려 있다. 중앙계약시장을 통한 대형 ESS와 계통포화지역의 배전망 ESS는 필요하다. 전력계통 전체의 안정성을 위해 일정 규모의 저장용량을 계획적으로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만으로 전국에 흩어진 수많은 태양광 발전소의 출력 변동과 지역별 계통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규모 계통용 ESS와 함께 개별 발전소와 지역 단위의 분산형 ESS가 성장해야 하는 이유다. 태양광이 생산되는 곳에서 전력을 저장하고 해당 지역의 계통 상황과 수요에 따라 방전할 수 있다면 중앙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부담도 줄어든다. 수많은 발전사업자가 ESS 투자에 참여한다면 정부 재정만으로 저장설비를 확충하는 것보다 훨씬 큰 규모의 자본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민간사업자에게 ESS 설치의 당위성만 강조해서는 투자가 일어나기 어렵다. 배터리와 PCS, 제어설비 등에 추가 자금이 들어가고 유지관리비와 배터리 성능 저하, 향후 교체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 출력제어를 피하기 위해 사업자가 자신의 돈으로 ESS를 설치하라는 접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ESS가 출력제어를 줄이고 계통 안정에 기여한다면 그 가치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ESS를 설치하면 돈이 되는 시장이 필요하다
정부 정책의 다음 단계는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부가 필요한 ESS를 직접 확보하는 것과 별도로 민간 발전사업자가 스스로 경제성을 계산해 ESS에 투자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가장 직접적인 수단 가운데 하나가 ESS 연계 태양광에 대한 가중치 강화 또는 이에 준하는 추가 보상이다.
태양광에서 생산된 전기를 곧바로 계통에 공급하는 발전소와 전력이 남는 시간에 저장했다가 필요한 시간에 공급하는 발전소의 계통 기여도를 똑같이 평가할 이유는 없다. 후자는 전력 생산에 더해 저장과 시간 이동이라는 추가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출력제어가 예상되는 시간에 전력을 저장해 발전량 손실을 줄이고 저녁 피크시간에 다시 공급한다면 전력계통 전체에도 편익을 제공한다.
다만 과거처럼 ESS를 설치했다는 사실 자체에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배터리가 설치돼 있는 것과 실제 계통이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배터리를 운영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ESS의 가치는 용량뿐 아니라 언제 충전하고 언제 방전했느냐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출력제어가 예상되는 시간에 태양광 전력을 저장하거나 계통포화지역에서 잉여전력을 흡수한 사업자에게 추가적인 보상을 주고, 전력수요가 증가하는 시간에 저장된 전력을 공급하면 다시 높은 가치를 인정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출력제어가 빈번한 지역의 ESS에는 더 높은 인센티브를 제공해 민간투자를 필요한 지역으로 유도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정책수단은 REC 가중치가 될 수도 있고 계약시장 전환 이후 별도의 계약가격이나 유연성 서비스 보상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제도의 이름이 아니다. ESS를 설치하고 실제 계통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사업자가 그렇지 않은 사업자보다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출력제어를 손실에서 투자 신호로 바꿔야
이런 시장이 만들어지면 출력제어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출력제어가 자주 발생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지역에 태양광이 너무 많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특정 시간과 지역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저장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능력이 부족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출력제어가 빈번한 지역일수록 ESS의 경제적 가치를 높게 인정할 수 있다. 전국의 ESS에 동일한 지원금을 지급하는 대신 실제 계통이 저장설비를 필요로 하는 지역과 시간에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면 민간자본도 그 신호를 따라 움직일 수 있다. 정부가 사업지를 일일이 선정해 ESS를 건설하지 않더라도 시장가격을 통해 저장설비를 필요한 곳으로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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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발전소는 출력을 제한하면서 값비싼 화석 연료 발전원에 혈세를 투입하는 현 정부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모든 태양광 발전소에 ESS 설치를 의무화할 필요도 없다. 지역별 계통 여건과 일사량, 발전밀도, 출력제어 가능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저장장치가 필요한 지역에서는 ESS를 설치하는 것이 유리하고 필요성이 낮은 곳에서는 그렇지 않도록 가격 신호를 차등화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민간사업자가 자신의 발전량과 계통 상황, 투자비용을 따져 스스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ESS는 정부 지원을 받아 설치하는 부속설비에서 하나의 독립적인 투자자산으로 바뀔 수 있다. 태양광 시장이 성장했던 것처럼 사업자가 경제성을 계산하고 금융기관이 사업성을 평가하며 민간자본이 유입되는 시장을 만들 수 있다. 정부 재정만으로 저장용량을 확보하는 방식보다 훨씬 빠른 확장도 기대할 수 있다.
태양광의 간헐성은 분명한 약점이다. 그러나 햇빛이 있는데도 발전기를 세우고 생산할 수 있는 전기를 버리는 것이 간헐성의 근본적인 해법일 수는 없다. 출력제어는 전기가 남는다는 신호이고 ESS는 그 남는 전기를 다른 시간으로 옮기는 수단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 두 신호를 시장에서 연결하는 것이다.
태양광을 민간투자로 키웠다면 간헐성 문제를 해결하는 ESS 역시 민간자본을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ESS를 설치할수록 돈이 되고, 출력제어가 필요한 시간에 저장할수록 더 많은 보상을 받고, 전력이 필요한 시간에 공급하면 다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시장이 필요하다.
ESS 가중치 강화 또는 이에 준하는 경제적 보상은 발전사업자에게 혜택을 하나 더 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출력제어로 버려질 전기를 저장하도록 민간자본을 움직이고 그 투자로 전력계통의 유연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시대의 성과를 더 이상 몇 GW를 설치했느냐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얼마나 많이 발전했는가에서 얼마나 버리지 않았는가로, 그리고 저장한 전기를 얼마나 필요한 순간에 다시 쓸 수 있는가로 정책의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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