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루의 시선] 전기요금 인하론의 착각, 문제는 발전이 아니라 계통이다 > 이슈&피플

본문 바로가기

이슈&피플

[태일루의 시선] 전기요금 인하론의 착각, 문제는 발전이 아니라 계통이다

profile_image
태일루 기자
2026-01-13 12:27 0

본문

전기요금 인하 논의는 늘 연료비에서 출발한다. 국제 가스 가격이 내려가면 전기요금도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다. 그러나 주요국 전기요금 구조를 보면 이 기대는 반복적으로 빗나간다. 발전·판매 비용은 조정될 수 있지만, 송전·배전과 정책 비용은 구조적으로 늘어난다. 전기요금의 방향을 결정하는 축은 이미 연료에서 계통으로 이동했다.


해외 주요국의 전기요금 구성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국토 면적과 무관하게 송전·배전 비용 비중이 높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전체 전기요금의 약 30~40%가 송전·배전 비용으로 추정된다. 장거리 송전, 노후 인프라 교체, AI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계통 보강 비용이 요금에 직접 반영된 결과다. 반면 국토 면적이 미국과 비교할 수 없이 작은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영국 역시 송전·배전 비용 비중이 대체로 25~30% 수준에 이른다. 이는 면적이 아니라 전력 시스템 구조의 문제다.


c726db8b46f621fc40a377834a4943da_1768274817_9384.png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유럽 국가들의 공통점은 전력망을 단일 국가 인프라가 아니라 통합 계통으로 운영한다는 점이다. 국가 간 연계망, 해저 케이블, 고압직류 송전망이 촘촘히 연결돼 있고 그 유지 비용이 전기요금에 반영된다.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는 이 흐름을 더 가속했다. 전력 흐름은 단방향에서 다방향으로 바뀌었고, 피크 대응을 위한 여유 설비가 늘어났다. 실제 이용률이 낮더라도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망이 증가했고, 그 비용은 숨기지 않고 요금으로 회수됐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의 전기요금 구조는 국제적으로 예외에 가깝다. 한국의 송전·배전 비용 비중은 약 10~15%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는 전력망 투자가 적어서라기보다, 그동안 망 비용을 요금에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한전 재무 구조나 정책 판단으로 흡수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기요금은 낮은 발전비 덕분이 아니라, 아직 청구되지 않은 계통 비용 위에 유지돼 온 구조였다.


종합하면 전기 요금의 상방 압력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발전·판매 부문은 연료비를 안정으로 조정할 여지가 있지만, 송전·배전과 정책 비용은 구조적으로 증가한다. 전력망 확충, 재생에너지 연계, 계통 안정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인프라로 전환됐다. 이 비용을 외면한 채 전기요금 인하만 요구하는 접근은 현실성이 없다. 


문제는 이 비용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은 향후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인프라다. 이 산업들은 값싼 전기보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전력을 요구한다. 망 투자와 계통 보강을 미루면 전기 요금은 일시적으로 억제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전력 부족과 접속 지연이 발생하고 결국 투자지는 해외로 이동한다. 


탄소 중립 역시 선언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전력 시스템을 다시 설계하느냐의 문제다. 태양광과 풍력은 단독으로는 불완전하지만, 계통과 결합될 때 가장 비용 효율적인 전원이 된다. 여기에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결합하면 재생 에너지는 변동성 리스크가 아니라 계통 안정 자산으로 전환된다. 이는 전기 요금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송전·배전 비용 상승 속도를 늦추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결국 선택지는 분명하다. 망 투자와 재생에너지, ESS를 통한 구조 전환을 선제적으로 추진하느냐, 아니면 요금 억제로 시간을 벌다 더 큰 비용을 떠안느냐의 문제다. 전기요금 논쟁의 초점은 ‘올릴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AI 경쟁력과 탄소 중립이라는 국가 목표를 가장 낮은 총비용으로 달성하는 경로가 무엇이냐로 옮겨가야 한다. 전기요금은 정쟁이 아니라 전기 요금 구성의 논리에 입각해 검토되어야 한다.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73 건 - 1 페이지

[태일루의 시선] 매뉴얼은 있지만 알려주지도 않고 작동하지도 않는다

재생에너지 전환, 어느 한쪽의 희생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친환경 에너지 웹진에서 일하면서 적지 않은 제보를 받는다. 대부분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의 하소연이다. 사업 과정에서 겪는 불편과 불합리한 제도에 대한 불만이 주를 이룬다. 물론 모든 주장이 타당한 것은 아니다. 자…

태일루 기자 2026.10.20

계통정보 공개기준 7년째 '공백'…태양광 사업자, 불투명한 계통정보에 기후부 상대 헌법소원

- 여유용량 확인 후 허가 신청했지만 '접속 불가'로 불허가…부지·인허가 비용 고스란히 손실- 기후솔루션·전국태양광발전협회 기자회견…부령 제정·공개 범위 확대 촉구- 접속 문 넓힌 정부, 2030년 100GW 실현하려면 투자 예측가능성도 확보해야태양광 발전사업자가 전력…

박담 기자 2026.10.15

[태일루의 시선] 장기계약은 이미 있었다… 정부의 RPS 개편 홍보가 외면한 시장의 현실

정부가 15년간 운영해 온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를 폐지하고 새로운 계약시장 도입을 추진하면서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고 있다. 한국에너지공단은 대중적 영향력이 큰 유튜브 경제 채널에 전문가와 정부 관계자를 출연시키고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제도 개편…

태일루 기자 2026.10.09

[태일루의 시선] 태양광은 민간이 키웠다…간헐성 해법 ESS도 ‘돈 되는 투자’로 만들어야

정부, ESS·유연접속 확대에도 민간투자 유인은 부족출력제어 늘수록 발전사업자 손실…잉여전력 저장으로 돌려야ESS 가중치·시간대별 보상 등 계통 기여에 인센티브 필요태양광 발전의 가장 오래된 약점은 간헐성이다. 해가 뜨면 발전하고 해가 지면 멈춘다. 구름이 지나가도 출…

태일루 기자 2026.09.29

[태일루의 시선] 전기는 수도권으로, 송전탑은 지방에… ‘47% 감축’의 이면

정부가 국가기간 전력망 건설 과정에서 송전탑을 대폭 줄이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기존 선로와 신설 선로를 통합하고 인구밀집 지역에서는 지중화를 확대한다. 계획대로라면 4,700여 기에 이르는 송전탑을 2,500여 기 수준까지 줄일 수 있다. 최대 47% 감축이다. 송전선…

태일루 기자 2026.09.20

제12차 전기본에 ‘안보전원’ 없는 로드맵을… “NDC 달성에 부합하는 조기 탈석탄 경로 수립해야”

'화석연료를넘어서', 기후부 공개토론회 앞서 완전한 탈석탄 로드맵 수립 촉구발전소별 폐쇄 시점·연도별 감축 목표 명시하고 모든 석탄 존치 예외 철회 요구“신규 LNG 확대 중단하고 재생에너지·노동자·지역사회 중심의 정의로운 전환 추진해야” 전국 탈화석연료 네트…

정운 기자 2026.09.18

[태일루의 시선] 호남 반도체의 물, ‘된다 안 된다’의 문제가 아니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 새로운 숙제가 등장했다. 물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용수는 전력만큼이나 중요하다. 생산라인은 막대한 양의 물을 끊임없이 사용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총량보다 안정성이다. 비가 많이 온 해에 물이 넘치고 가뭄이 든 해에 부족하다면 평균 공급량은 큰 …

태일루 기자 2026.09.17

“2030년까지 태양광 87GW, 가능한가”…전국 입지·전력망 데이터로 답한 ‘대한민국 햇빛지도’

기후솔루션, 전국 태양광 입지 잠재량·배전망 여유용량 통합 웹페이지 공개전국 물리적 설치 잠재량 398.2GW…영농형으로 256G.4W, 건물 지붕·주차장으로 51.6GW배전망 수용 여력 74GW, 송전탑 추가 대신 주변압기·배전선로 보강으로만 182.2GW로 확대 추…

정운 기자 2026.09.17

[태일루의 시선] 4개월 만에 20% 뛴 전력수요, 정부는 이 숫자를 믿으라는 것인가

2040년 최대전력 전망치, 불과 넉 달 만에 27GW 늘어나AI와 반도체라는 이름만 바꿔 과거의 예측 실패 반복기업 뿐만 아니라 전체 국민 목소리 들어야국가의 전력계획은 숫자에서 시작한다. 앞으로 전기를 얼마나 사용할지 예측하고, 그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발전소를 얼…

태일루 기자 2026.09.01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2040년에도 석탄은 ‘안보전원’으로 남기고 미래 불확실한 수요로 화석연료를 더할 …

기후솔루션이 정부가 수립 중인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두고 미래 전력수요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LNG 발전을 확대하고 폐지 대상 석탄발전까지 ‘안보전원’으로 남길 경우 정부가 내세운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대전환’의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기후솔루션은 2…

정운 기자 2026.08.24

[태일루의 시선] 전기는 필요한데, 어디에도 지을 곳이 없다

대한민국이 AI 강국을 외치고 있다. 정부도 기업도 인공지능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꼽는다. AI 산업을 이야기하면 첨단 반도체와 데이터가 먼저 떠오르지만 이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전기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컴퓨팅 능력의 경쟁이고 컴퓨팅 능력은 막대한 전력 소비를 동…

태일루 기자 2026.08.20

30년 전부터 기후위기 알았던 한전…누적배출 비용 4870억 달러 이상·조기 사망 위험 35만 명 기여

1996년 한전 경영진단, 기후규제·화석연료 위험 이미 경고…그 뒤 30년간 화력발전 확대 이어와한전·발전5사 2011~2023년 누적배출 약 26억 톤…전문가 분석 “사회적 비용 최소 4870억 달러”기온 관련 조기 사망 위험에도 약 35만 명 기여 추정…“몰랐던 위…

박담 기자 2026.08.19

폭염·가뭄 시대 원전의 숨겨진 약점…먼저 필요한 것은 막대한 '냉각수'

기후위기가 심화되면서 원자력발전의 또 다른 취약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바로 막대한 냉각수 의존성이다. 원전은 발전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는 장점 때문에 탄소중립 시대의 주요 전원으로 거론되지만, 안정적인 가동을 위해서는 대규모 수자원을 지속적으로…

정운 기자 2026.08.10

[태일루의 시선] 송전선만이 답은 아니다…수력발전이 여는 재생에너지 계통 혁신

EU ‘25GW 하이브리드 발전’이 한국 전력정책에 던지는 과제재생에너지 확대의 최대 걸림돌은 발전설비가 아니라 계통이라는 지적이 다시 제기됐다. 국제 에너지 싱크탱크 Ember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유럽 주요 국가들이 기존 수력발전소의 계통 접속설비를 풍력·태양광…

태일루 기자 2026.08.05

[태일루의 시선] 태양광 이격거리 개편의 마지막 과제

태양광 산업이 또 하나의 중대한 제도 변화를 앞두고 있다. 정부는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시행령을 개정해 지방자치단체마다 제각각 운영해 온 이격거리 규제를 국가 기준으로 정비할 방침이다. 지역에 따라 300m에서 500m, 일부 지역에서는 1km…

태일루 기자 2026.07.27
기사 전체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