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루의 시선] 호남 반도체의 물, ‘된다 안 된다’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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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 새로운 숙제가 등장했다. 물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용수는 전력만큼이나 중요하다. 생산라인은 막대한 양의 물을 끊임없이 사용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총량보다 안정성이다. 비가 많이 온 해에 물이 넘치고 가뭄이 든 해에 부족하다면 평균 공급량은 큰 의미가 없다. 반도체 공장이 원하는 물은 365일 끊기지 않는 물이다.
정부가 내놓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용수 계획은 하루 65만 톤이다. 여러 댐에서 물을 확보하고 여기에 하루 30만 톤 규모의 하수재이용수를 보조 수원으로 활용한다. 숫자만 보면 적지 않은 양이다. 그러나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는 이 계획의 지속가능성에 질문을 던졌다. 호남의 주요 댐은 강수량에 따른 유입량과 저수율의 변동폭이 크다. 실제 극심한 가뭄 때 일부 댐의 저수율이 크게 떨어진 사례도 있다. 영산강과 섬진강 수계의 물 사정 역시 넉넉하다고만 말하기 어렵다. 문제는 ‘65만 톤을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다. 최악의 가뭄이 왔을 때도 매일 65만 톤을 공급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성급하게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입지 문제로 결론을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 아직 용수 문제를 근거로 호남 클러스터를 반대하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다만 앞으로 이런 우려가 호남의 입지 자체를 문제 삼는 논리로 확대될 가능성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물이 부족할 수 있으니 호남에 반도체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식의 이분법은 문제의 본질을 비켜간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단순한 산업단지 하나를 만드는 사업이 아니다.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된 첨단산업의 지도를 바꾸고 지역에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국가적 프로젝트다. 지역균형발전이 더 이상 선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사업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약점을 감출 이유가 없다. 오히려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지금 더 까다롭게 따져야 한다.
용인도 처음부터 모든 것이 갖춰진 완성형 반도체 입지는 아니었다. 대규모 전력이 필요했고 엄청난 양의 용수를 새로 확보해야 했다. 이를 위해 국가가 별도의 용수 공급망을 만들고 발전용댐과 재이용수까지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대규모 송전망 구축도 뒤따르고 있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서기 때문에 필요한 인프라를 국가가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용인과 호남 가운데 어느 곳이 더 좋은지를 가르는 일이 아니다. 용인에 인프라가 부족하면 국가가 인프라를 만든다. 그렇다면 호남도 같은 기준으로 봐야 한다. 지방에 필요한 기반시설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첨단산업이 지방으로 갈 수 없는 이유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지역균형발전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산업은 인프라가 있는 곳으로 가고 다시 그 산업을 따라 인프라가 집중된다. 기업과 사람과 자본이 수도권으로 몰리고 그 결과 수도권은 더욱 유리한 입지가 된다. 이렇게 형성된 격차를 다시 ‘입지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평가한다면 지방은 영원히 수도권을 따라잡을 수 없다. 수도권의 부족한 인프라는 ‘해결할 문제’이고 지방의 부족한 인프라는 ‘입지의 한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런 논리라면 지역균형발전은 영원히 구호에 머문다. 호남의 용수 문제가 앞으로 수도권 집중을 정당화하는 논거로 소비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으로 물 문제를 덮어서도 안 된다. 호남이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 가운데 하나는 물의 총량보다 배분이다. 광주에 들어설 반도체 클러스터에 공급할 댐용수 하루 65만 톤 가운데 55만 톤, 약 85%가 섬진강 수계에서 나올 계획이다. 공장은 광주에 들어서지만 물의 대부분은 다른 수계에서 가져오는 구조다. 물은 산업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마셔야 하고 농사를 지어야 하며 하천 생태계도 유지해야 한다. 가뭄이 심해지면 생활용수와 농업용수, 산업용수가 같은 물을 놓고 경쟁하게 된다. 특히 섬진강은 이미 오랫동안 여러 지역에 물을 공급해 왔고 물 배분을 둘러싼 갈등도 경험했다. 여기에 거대한 반도체 클러스터라는 새로운 수요자가 등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단순히 물을 끌어오는 기술이 아니라 물을 나누는 원칙이다. 극심한 가뭄이 왔을 때 어떤 용수를 우선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지역 간 부담과 편익을 어떻게 나눌지도 합의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의 혜택을 받는 지역과 물을 제공하는 지역 사이에 합리적인 상생 구조도 필요하다. 국가전략산업이라는 이유로 어느 한 지역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지속가능한 사업이 될 수 없다. 물길을 만들기 전에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수원을 찾기 전에 지금 가지고 있는 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이 대목에서 눈길을 끄는 숫자가 44.7%다. 2025년 호남권 주요 하천의 허가량 대비 실제 하천수 사용률이다. 영산강은 36.2%에 그친다. 물론 이 숫자를 단순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농업용수의 계절적 변동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있고 허가받고 사용하지 않은 물을 모두 반도체 공장으로 돌릴 수 있다는 뜻도 아니다. 그래도 질문은 남는다. 우리는 지금 가지고 있는 물을 제대로 쓰고 있는가.
물을 확보한다고 하면 흔히 댐부터 떠올린다. 관로를 깔고 새로운 수원을 개발하는 대형 토목사업이 먼저 등장하기 쉽다. 그러나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미 가지고 있는 물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실제 사용량보다 과도하게 설정된 허가량이 있다면 현실화하고 수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재배분해야 한다. 산업용수의 재이용률도 높여야 한다. 광주에서 추진하는 하루 30만 톤 규모의 하수재이용수도 그런 보조 수단 가운데 하나다. 반도체 핵심 공정에 모두 사용할 수는 없지만 냉각수 등 일반 공정에 활용하면 그만큼 양질의 댐용수를 아낄 수 있다.
기존 댐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법과 제도의 공백도 정비해야 한다. 발전을 목적으로 확보한 물을 공업용수로 활용하려면 목적 외 사용과 사용료 문제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이 문제는 호남에서 처음 등장한 것도 아니다. 용인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이미 제기됐다. 용인에서 드러난 숙제를 호남에서 다시 처음부터 반복할 이유가 없다. 국가가 두 지역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함께 추진하고 있다면 한쪽에서 확인된 문제를 다른 쪽의 정책 설계에 반영하는 것이 당연하다. 용인과 호남을 경쟁자로 놓기보다 서로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교과서로 삼는 편이 낫다.
결국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물 문제는 하루 65만 톤이라는 숫자를 제시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평년의 공급 가능량보다 최악의 상황에서 얼마를 공급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10년, 20년 뒤 기후변화까지 고려한 가뭄 시나리오도 필요하다. 생활용수와 농업용수를 위협하지 않으면서 산업용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근거도 보여줘야 한다. 기존 수자원의 재배분과 재이용, 법과 제도의 정비를 먼저 하고 그래도 부족하다면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면 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이 바로 그것이다.
무엇보다 지역의 동의가 필요하다. 지역균형발전은 한 지역을 살리기 위해 다른 지역의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다. 광주에 반도체 산업을 키우면서 섬진강 유역 주민에게 물 부족의 위험을 떠넘긴다면 그것 역시 균형발전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산업의 이익과 수자원의 부담을 함께 나누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물을 제공하는 지역까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성장에서 실질적인 편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물 문제는 위기라기보다 시험대에 가깝다. 국가가 정말 지역균형발전을 할 의지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험대다. 지금까지 우리의 산업입지 정책은 기업이 모여 있는 곳에 인프라를 더 공급하는 방식에 익숙했다. 기업이 수도권에 있으니 전력망을 끌어오고 물을 공급하고 도로를 만든다. 인프라가 좋아지니 다시 기업이 몰린다. 수도권 집중은 이런 방식으로 스스로를 강화해 왔다.
이제는 순서를 바꿀 필요가 있다. 국가가 전략적으로 첨단산업을 분산하기로 결정했다면 필요한 전력과 용수, 교통과 인재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공장 몇 개를 지방에 세우는 것으로 지역균형발전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연구개발과 소재·부품·장비 기업, 대학과 인재가 함께 움직이고 그곳에서 다시 투자가 만들어지는 산업 생태계가 형성돼야 한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가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광주에 반도체 공장 몇 개를 세우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니다. 수도권 밖에 또 하나의 첨단산업 축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이것이 성공해야 다른 첨단산업의 지역 분산도 현실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지역균형발전이 구호가 아니라 산업정책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려면 물 문제부터 제대로 풀어야 한다.
물 부족 가능성이 있으니 호남은 안 된다는 결론도 답이 아니다. 균형발전이 중요하니 어떻게든 물은 될 것이라는 낙관도 답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위험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해결하는 것이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호남에 반도체를 지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호남에 반도체 산업을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국가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지역균형발전은 남는 것을 지방에 나눠주는 정책이 아니다. 산업이 지방에서도 뿌리내리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건을 국가가 만드는 일이다. 전력도 그렇고 물도 그렇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물은 그래서 ‘된다, 안 된다’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되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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