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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일루의 시선] 전기는 필요한데, 어디에도 지을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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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일루 기자
2026-08-20 10:3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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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AI 강국을 외치고 있다. 정부도 기업도 인공지능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꼽는다. AI 산업을 이야기하면 첨단 반도체와 데이터가 먼저 떠오르지만 이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전기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컴퓨팅 능력의 경쟁이고 컴퓨팅 능력은 막대한 전력 소비를 동반한다. 데이터센터가 AI 시대의 핵심 기반시설로 부상한 이유다. 반도체와 전기차, 산업 전기화까지 고려하면 앞으로 안정적이고 충분한 전력을 확보하는 것은 에너지 정책을 넘어 국가 산업정책의 문제가 된다.


그런데 정작 그 전기를 사용하는 데이터센터를 지을 곳부터 마땅치 않다. 지난 12일 서울시 구청장협의회는 제203차 정기회의를 열어 데이터센터 건립 제한을 위한 제도 개선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데이터센터 건축 때 건축심의를 의무화하고 제2·3종 일반주거지역에서는 건립을 제한할 수 있도록 서울시 조례를 개정하자는 내용이다. 장기적으로는 준주거지역과 준공업지역, 상업지역에서도 전력과 용수 여건, 주변 주거환경을 고려해 자치구가 허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건축법 개정까지 요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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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생성 이미지


구청장들의 걱정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등포구에서 이미 추진됐거나 추진 중인 데이터센터만 8곳이다. 1곳은 완공됐고 2곳은 공사 중이며 나머지도 건립이나 인허가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영등포구는 데이터센터가 계속 늘어나면 지역 내 7개 변전소만으로 전력 공급이 어려워져 일반 건축물은 물론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여기에 대규모 전력 사용과 냉각용수, 소음과 열, 주거환경에 대한 주민들의 걱정도 더해진다. AI 산업은 필요하지만 데이터센터가 주거지역 가까이 들어오는 것은 곤란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서울 구청장들이 데이터센터를 걱정하기 하루 전인 지난 11일 국회에서는 정반대편의 사람들이 모였다. 전국 9개 지역에서 올라온 농민과 주민들이었다. 이들은 ‘일방적 희생 넘어 정의로운 전환으로, 농촌의 목소리를 듣다’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태양광과 풍력, 양수발전, 고압 송전선로 등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농촌이 겪고 있는 문제를 증언했다. 국회 본관 앞에서는 기자회견도 열렸다. 이들의 주장은 재생에너지 확대 자체를 반대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국가의 에너지 전환을 위해 농촌 주민의 삶과 생존권이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방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이틀 사이 서울과 농촌에서 제기된 두 주장을 나란히 놓으면 대한민국 전력 정책이 처한 딜레마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서울에서는 막대한 전기를 소비하는 데이터센터가 지역 전력망과 주거환경에 부담을 준다며 규제를 요구한다. 농촌에서는 도시와 산업단지에 공급할 전기를 생산하기 위한 태양광과 풍력, 그리고 그 전기를 운반할 송전망 때문에 자신들이 희생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기를 사용하는 시설도 부담스럽고 전기를 생산하는 시설도 부담스럽다. 생산한 전기를 소비지로 보내는 송전시설 역시 환영받지 못한다. 각각의 주장만 떼어놓고 보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지만 세 가지를 한꺼번에 놓으면 결국 하나의 질문에 부딪힌다. 그렇다면 전기는 어디에서 만들어 어디로 보내야 하는가.


농촌의 불만을 단순한 지역이기주의로 치부할 수도 없다. 그동안 발전소와 송전선로 같은 대규모 에너지 인프라 상당수가 비도시 지역에 자리 잡았다. 전기의 최종 소비는 수도권과 대도시, 산업단지에 집중되지만 이를 생산하고 운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간적 부담은 농어촌이 상당 부분 떠안아왔다.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국가적 목표에는 동의하지만 그 과정에서 농지가 발전사업 부지로 바뀌고 농촌의 경관과 생활환경이 변하며 지역 주민이 충분한 경제적 혜택을 얻지 못한다면 반발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11일 국회에 모인 농민과 주민들이 주민 참여와 이익 공유를 강조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다만 농촌 태양광을 외부 자본에 의한 일방적인 농촌 침탈로만 설명하는 것 역시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태양광 발전사업자가 남의 땅을 아무런 대가 없이 가져다 발전소를 짓는 것은 아니다. 토지를 매입하거나 임차하고 발전사업과 개발행위에 필요한 절차를 밟는다. 사업 과정에서 주민들과 협의하고 지역에 따라 마을발전기금이나 각종 지원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주민이 발전사업에 직접 참여하고 수익 일부를 공유하는 제도도 운영되고 있다. 모든 태양광 사업을 농촌의 희생이라는 하나의 틀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더 근본적으로는 농지를 소유한 농민의 선택권도 생각해야 한다. 농민이 자신의 땅에서 계속 농사를 지을 것인지, 태양광 발전사업자에게 임대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 역시 재산권의 영역이다. 농사로 얻는 소득보다 태양광 부지 임대료가 훨씬 높다면 고령의 농민에게 농업을 계속하라고 요구할 명분이 어디까지 있는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식량안보를 위해 농지를 보전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만 그 비용을 농민 개인에게만 부담시킬 수는 없다. 사회 전체가 식량안보를 원한다면 농민이 농사를 계속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조건도 사회가 만들어줘야 한다. 농업으로 충분한 소득을 얻기 어렵게 해놓고 더 높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토지 이용은 막겠다는 것 역시 모순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는 것이 답도 아니다. 같은 농촌 안에서도 이해관계는 다르다. 농지를 소유한 사람과 실제 농사를 짓는 사람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토지 소유자에게 태양광은 새로운 임대소득이 될 수 있지만 그 땅에서 농사를 짓던 임차농에게는 경작지를 잃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발전소와 인접한 주민과 멀리 떨어진 주민의 이해관계도 같지 않다. ‘농민’이나 ‘지역주민’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기에는 현실이 훨씬 복잡하다. 농촌 태양광 문제를 사업자와 농민의 대립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영농형 태양광이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농사를 포기하고 발전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땅에서 농업과 발전을 병행하자는 것이다. 농업 생산기반을 유지하면서 농가에는 추가 소득을 제공하고 국가적으로는 재생에너지 설비를 확대할 수 있다면 분명 매력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영농형 태양광 역시 만능 해법은 아니다. 누가 토지를 소유하고 누가 농사를 지으며 누가 발전수익을 가져갈 것인지에 따라 새로운 이해관계가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태양광이라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사업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편익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있다.


서울의 데이터센터 문제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AI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민은 데이터센터가 어느 동네에 있는지 알 필요가 없다. 기업 역시 필요한 순간 서버에 접속하면 된다. AI 산업이 성장하면 그 경제적 편익은 국가 전체로 퍼진다. 그러나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는 지역 주민에게는 전력 부족과 용수, 소음과 열, 주거환경 변화가 현실적인 문제가 된다. 국가적으로는 필요한 시설이지만 지역의 입장에서 보면 비용과 편익의 계산이 달라지는 것이다.


태양광과 송전망도 마찬가지다. 농촌에서 생산한 전력은 수도권의 빌딩과 산업단지에서 사용되고 기업의 RE100 달성에도 활용된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탄소 감축 효과 역시 사회 전체가 공유한다. 그러나 발전소와 송전선로가 들어서는 지역 주민에게는 농지와 경관, 생활환경의 변화가 눈앞의 현실이다. 결국 데이터센터와 태양광을 둘러싼 갈등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라 같은 구조에서 발생한다. 전력 소비와 에너지 전환의 편익은 넓게 분산되는 반면 전력 인프라가 가져오는 비용은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구조다.


그렇다면 해법 역시 어느 한쪽에만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수도권과 대도시도 자신들이 소비하는 전력에 대한 공간적 책임을 더 많이 져야 한다. 건물과 공장 지붕 태양광, 분산형 전원, 에너지저장장치 등 도시 안에서 감당할 수 있는 전력 인프라는 최대한 소비지역 가까이에 설치해야 한다. 데이터센터 역시 전력망 여건을 고려해 입지를 결정하고 지역사회가 감당해야 하는 부담에 상응하는 편익을 제공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농촌에도 합당한 대가가 돌아가야 한다. 토지 임대료나 일회성 발전기금에 그치지 않고 발전사업이 운영되는 동안 지역사회가 지속적으로 경제적 편익을 공유할 수 있는 구조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주민참여형 발전과 영농형 태양광은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토지를 확보하고 주민과 협의해 추진되는 사업까지 모두 농촌을 희생시키는 개발로 규정해서도 곤란하다. 재생에너지 확대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일정한 사회적 비용 역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역할은 바로 이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 있다. 발전소를 몇 GW 늘리겠다는 목표만 세워서는 부족하다. 어디에서 전력을 만들고 어디에서 소비하며 어떤 전력망을 통해 이동시킬 것인지까지 하나의 공간정책으로 다뤄야 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누가 부담하고 경제적 편익을 누가 가져갈 것인지도 명확하게 설계해야 한다. 발전소와 송전망은 농촌에 몰아놓고 수도권은 전력 소비만 늘리는 구조도 지속 가능하지 않지만, 모든 지역의 반대를 이유로 필요한 전력 인프라 건설을 포기하는 것 역시 가능하지 않다.


지난 11일 국회에 모인 농민들과 하루 뒤 데이터센터 규제를 요구한 서울 구청장들의 행동은 전혀 다른 사건처럼 보인다. 그러나 둘은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국가적으로 필요한 전력시설의 부담을 누가 질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서울은 AI 산업을 원하고 기업은 더 많은 전력을 원한다. 정부는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려 한다. 농촌은 지역의 희생을 강요하지 말라고 하고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주민도 자신의 삶을 존중해달라고 요구한다. 어느 하나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이 모든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전력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발전소에는 땅이 필요하고 전기를 옮기려면 송전선과 변전소가 필요하다. AI를 돌리려면 데이터센터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시설은 결국 대한민국의 어느 지역엔가 들어서야 한다. 이제 에너지 논쟁도 어떤 발전원이 더 좋은지를 따지는 수준을 넘어 어디에 지을 것인지, 그 부담을 누가 지고 발생하는 이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논의해야 한다.


AI도 원하고 탄소중립도 원한다. 값싼 전기도 필요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도 원한다. 그런데 서울은 데이터센터가 싫고 농촌은 발전소가 싫으며 그 사이의 지역은 송전탑이 싫다고 한다면 답은 나오지 않는다. 전기는 스위치 너머에서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디선가는 만들어야 하고 어디론가는 보내야 하며 어디선가는 사용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은 이제 그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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