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가뭄 시대 원전의 숨겨진 약점…먼저 필요한 것은 막대한 '냉각수' > 이슈&피플

본문 바로가기

이슈&피플

폭염·가뭄 시대 원전의 숨겨진 약점…먼저 필요한 것은 막대한 '냉각수'

profile_image
정운 기자
3시간 32분전 0

본문

기후위기가 심화되면서 원자력발전의 또 다른 취약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바로 막대한 냉각수 의존성이다. 원전은 발전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는 장점 때문에 탄소중립 시대의 주요 전원으로 거론되지만, 안정적인 가동을 위해서는 대규모 수자원을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기후변화로 폭염과 가뭄이 잦아지는 현실에서는 이 문제가 원전 확대 정책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원자력발전은 핵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열을 식히기 위해 엄청난 양의 냉각수를 사용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원전은 바다나 강, 대형 호수 인근에 건설된다. 냉각수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발전 효율이 떨어질 뿐 아니라, 일정 기준 이상으로 수온이 상승하거나 취수량이 부족할 경우 출력 감축이나 가동 중단까지 불가피하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이러한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최근 수년간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으로 주요 하천의 수위가 낮아지고 수온이 상승하면서 여러 원전이 출력을 줄이거나 일시적으로 가동을 제한했다. 냉각에 사용할 물이 부족하거나 환경 규제로 인해 고온의 냉각수를 하천에 방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가 단순히 재생에너지의 변동성 문제가 아니라 원전의 안정적인 운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f90c52de66b91b83379ebc88e6a8e9c0_1786327584_0395.png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문제는 앞으로 이러한 현상이 더욱 빈번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는 폭염의 강도와 지속 기간을 늘리고 있으며, 지역별 강수량 편차도 확대되고 있다. 물 부족은 더 이상 일부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용수와 생활용수, 농업용수 확보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대규모 냉각수를 필요로 하는 원전은 수자원 확보 측면에서도 새로운 부담이 될 수 있다.


국내 역시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는 여름철 폭염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으며, 극한호우와 가뭄이 반복되는 등 기후변화의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전력·용수 수요 시설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 원전까지 확대될 경우 지역별 수자원 관리 부담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원전 논의에서 간과되는 또 하나의 사실은 ‘에너지 안보’와 ‘물 안보’가 점점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발전소를 얼마나 많이 짓느냐가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발전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물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도 중요한 정책 변수다. 특히 기후변화 시대에는 냉각수 확보 능력 자체가 발전 설비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반면 태양광과 풍력은 발전 과정에서 냉각수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발전 설비를 운영하기 위해 막대한 수자원을 지속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은 앞으로 더욱 중요한 장점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높다. 전력 생산 과정에서 물 사용량까지 고려하는 ‘물 발자국(Water Footprint)’ 개념이 에너지 정책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물론 어느 발전원도 완벽하지 않다. 원전은 안정적인 기저전원을 공급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재생에너지는 출력 변동성과 계통 운영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특정 발전원의 장점만을 강조한 채 구조적인 한계를 외면해서는 현실적인 에너지 정책을 설계하기 어렵다.


앞으로 원전 확대를 논의한다면 경제성과 탄소배출량뿐 아니라 냉각수 확보 가능성, 기후변화에 따른 운영 리스크, 지역 수자원과의 경쟁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에너지 정책은 더 이상 전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전기를 생산하는 기술과 함께 그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물을 필요로 하는지도 국가 에너지 전략의 핵심 기준이 되어야 한다.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61 건 - 1 페이지

열람중폭염·가뭄 시대 원전의 숨겨진 약점…먼저 필요한 것은 막대한 '냉각수'

기후위기가 심화되면서 원자력발전의 또 다른 취약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바로 막대한 냉각수 의존성이다. 원전은 발전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는 장점 때문에 탄소중립 시대의 주요 전원으로 거론되지만, 안정적인 가동을 위해서는 대규모 수자원을 지속적으로…

정운 기자 3시간 32분전

[태일루의 시선] 송전선만이 답은 아니다…수력발전이 여는 재생에너지 계통 혁신

EU ‘25GW 하이브리드 발전’이 한국 전력정책에 던지는 과제재생에너지 확대의 최대 걸림돌은 발전설비가 아니라 계통이라는 지적이 다시 제기됐다. 국제 에너지 싱크탱크 Ember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유럽 주요 국가들이 기존 수력발전소의 계통 접속설비를 풍력·태양광…

태일루 기자 2026.08.05

[태일루의 시선] 태양광 이격거리 개편의 마지막 과제

태양광 산업이 또 하나의 중대한 제도 변화를 앞두고 있다. 정부는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시행령을 개정해 지방자치단체마다 제각각 운영해 온 이격거리 규제를 국가 기준으로 정비할 방침이다. 지역에 따라 300m에서 500m, 일부 지역에서는 1km…

태일루 기자 2026.07.27

[태일루의 시선]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대, 내재 탄소를 설명하지 못하면 국경을 넘지 못한다

2026년 1월부터 탄소는 실제 비용이 된다. 유럽연합이 도입한 탄소국경조정제도, 즉 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이 내년 1월 1일부터 본격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경을 넘는 제품에 탄소 배출량만큼의 비용이 부과된다. …

태일루 기자 2025.12.29

출력제어 5개월간 316회·16만1805MWh…송전망 병목이 원인인데.. '재생 에너지 탓', '원전 확대'…

전력망 부족으로 발전소가 전기를 생산하고도 가동을 멈추는 출력제어가 올해 들어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5월 출력제어는 316회, 제어량은 16만1805MWh를 기록했다. 불과 5개월 만에 지난해 연간 기록인 281회와 16만9812MWh의 95.3%에 도달했…

박담 기자 2026.07.23

[태일루의 시선] "빨리 참여하라"…답보다 홍보만 남긴 마지막 RPS 고정가격 경쟁입찰 설명회

마지막 RPS 입찰 설명회, 시장에 확신보다 불안만 남기다올해 태양광 고정가격계약 경쟁입찰이 시작됐다. 정부는 모집 물량 1000MW를 공고하고 상한가격을 kWh당 147.6원으로 지난해보다 5% 인하했다. 태양광 균등화발전비용(LCOE)이 낮아졌다는 것이 이유다.그러…

태일루 기자 2026.07.21

메가프로젝트 전력수요 논란…기후단체 "화석연료 확대 명분 돼선 안 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4755조원 규모의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둘러싸고 기후·에너지 시민단체들이 대규모 산업 육성이 화석연료 발전 확대의 명분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기후솔루션과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녹색전환연구소는 15일 공동 입장문을 통해 "…

정운 기자 2026.07.15

[태일루의 시선] 원전 만능주의, 토건의 망령을 벗어나야 한다

원전은 말하지만 갈등은 말하지 않는 원전 옹호론자들적대적 진영 논리로 근본적 문제 외면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원전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데이터센터가 늘어나고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니 결국 답은 원전이라는 주장이다. 원전은 안정적이고, 재생에너…

태일루 기자 2026.07.14

[태일루의 시선] AI는 전기를 먹는다… 국가 AI 시대, RE100을 다시 생각할 때

미국의 인공지능(AI) 정책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난다. 얼마 전 오픈AI의 샘 올트먼은 정부가 AI 기업의 지분 일부를 보유해 그 수익을 국민과 나누는 방안을 제안했다. AI가 만들어내는 부를 소수 기업이 독점하기보다 사회 전체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구조를…

태일루 기자 2026.07.08

전기차 판매는 질주하는데 충전은 '대기'… 인프라 없이 규제만 앞서는 정부 정책

올해 상반기 전기차 판매 42.7% 증가… 점유율 역대 최고충전기는 49만기 넘어섰지만 급속충전기 부족·2,700기 장기 방치PHEV 7시간 제한 등 규제 강화…"인프라 확충이 먼저" 지적고유가와 정부 보조금, 완성차 업체들의 가격 인하가 맞물리면서 국내 전기차 시장이…

정운 기자 2026.07.03

[태일루의 시선] 수도권 중독증과 기득권 카르텔, ‘3대 메가프로젝트’의 발목을 잡지 마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총 4,755조원 규모의 초대형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평택·용인과 호남, 충청, 영남권 반도체·AI 사업에 2,655조원을 투자하고, SK그룹은 전국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에 2,100조원을 투입한다. 청와…

태일루 기자 2026.06.30

“ESG 펀드인데 화석연료 투자?”…한국, ‘그린워싱 규제 공백’ 드러나

글로벌 ESG 펀드 시장, 2019년 5100억 달러 → 2025년 4조 1300억 달러로 약 8배 성장 국내 ESG 펀드 시장도 9조 3800억 원 규모로 확대, 전년 대비 37% 증가 미국·EU·싱가포르, ESG 펀드에 최소 70~80% 투자 기준…

정운 기자 2026.06.29

[태일루의 시선] 가속페달은 정부가 밟고, 브레이크는 전력시장이 밟고 있다

어제 전남 나주 한국전력거래소 앞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대한태양광발전사업자협회와 전국태양광발전협회, 한국풍력산업협회, 기후솔루션이 한자리에 모여 전력시장·계통운영 규칙 개정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태양광과 풍력 업계가 함께 공동행동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

태일루 기자 2026.06.24

태양광•풍력 산업계 한 뜻으로 "재생에너지 가로막는 전력운영규칙 개정하라" - 전태협 등 공동 기자회견 개최

태양광·풍력 양대 산업 협회 공동행동... "정부는 100GW 가속페달, KPX 규칙은 화력 우대 브레이크", "재생에너지의 미래 좌우하는 규칙, 정작 재생에너지 당사자는 배제된 채 결정" 최소발전용량 심의 투명성·자기계약 추가 보상•KPX 거버넌스 등 3대 …

박담 기자 2026.06.24

[태일루의 시선] 스리백과 포백보다 더 중요한 것

월드컵이 떠올리게 한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의 과제월드컵 기간이다. 태양광과 전력망, 재생에너지 정책을 주로 다루는 지면에서 갑자기 축구 이야기를 꺼낸다고 독자들께서 의아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 친환경 전문지에서 웬 축구 칼럼이냐고 핀잔을 주셔도 달게 받겠다.다만 축…

태일루 기자 2026.06.18
기사 전체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