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루의 시선] 태양광 이격거리 개편의 마지막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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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산업이 또 하나의 중대한 제도 변화를 앞두고 있다. 정부는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시행령을 개정해 지방자치단체마다 제각각 운영해 온 이격거리 규제를 국가 기준으로 정비할 방침이다. 지역에 따라 300m에서 500m, 일부 지역에서는 1km에 이르는 이격거리 규제가 적용되면서 발전사업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했던 현실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방향은 전향적이다. 이격거리 규제는 주민 생활환경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태양광을 배제하는 수단으로 변질된 측면이 있다. 발전소 부지의 환경과 경관, 주민 수용성보다 도로나 주택에서 몇 m 떨어져 있는지가 허가 여부를 좌우했다. 같은 조건의 사업도 행정구역 경계 하나를 사이에 두고 허가와 불허가가 갈렸다. 전국 단위의 에너지 정책이 지방정부의 조례에 따라 조각나는 비정상적인 구조였다.
정부 개정안은 태양광 발전시설의 이격거리를 부지 경계선으로부터 최대 200m 범위에서 정하도록 하고, 기준이 되는 대상도 일정 수 이상의 주택으로 한정했다. 과도한 규제를 제한하면서 주민 생활권도 고려한 절충안이다. 지자체가 지역 사정을 반영할 여지는 남겨두되 태양광 사업을 봉쇄할 정도로 이격거리를 확대하지 못하도록 상한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법령을 바꾸는 것과 현장을 바꾸는 것은 다른 문제다. 시행령이 정부안대로 공포되더라도 전국 지자체의 조례가 동시에 바뀌는 것은 아니다. 조례 개정에는 개정안 마련과 입법예고, 법제 심사, 지방의회 의결과 공포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 지방의회 회기와 지역 정치 상황에 따라 수개월 이상 걸릴 수도 있다. 상위법령은 시행됐지만 이에 맞지 않는 조례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과도기가 불가피한 셈이다.
특히 도로 이격거리가 논란의 중심에 설 가능성이 크다. 개정안은 태양광에 대해 주택 이격거리만 규정하고 있다. 반면 풍력발전은 주택과 도로의 이격거리를 각각 명시했다. 태양광에는 도로 기준을 두지 않고 풍력에는 이를 명문화한 것은 두 발전원을 달리 규율하겠다는 입법적 판단으로 읽힌다.
하지만 상당수 지자체는 현재도 태양광 발전시설을 도로에서 100m 또는 200m 이상 떨어뜨리도록 조례에 규정하고 있다. 시행령이 발효된 뒤에도 해당 조례를 계속 적용할 수 있는지를 놓고 사업자와 허가권자 사이에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상위법령이 조례로 정할 수 있는 범위를 구체화했는데도 지자체가 별도의 도로 이격거리를 적용한다면 위임 범위를 넘어선 규제라는 주장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기존 조례가 시행령 시행일에 저절로 삭제되는 것은 아니다. 조문은 남아 있고 담당 공무원은 현행 조례에 따라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상위법령에 맞지 않는 조례를 적용했다가 행정심판이나 소송에서 처분이 취소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어떤 지자체는 기존 도로 이격거리를 계속 적용하고 다른 지역은 적용을 중단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지역별 편차를 없애기 위해 시행령을 개정했는데 조례 정비가 늦어지면서 또 다른 편차가 생기는 역설이다.
발전사업자가 감당해야 할 불확실성은 더욱 크다. 토지계약과 개발행위허가를 준비하는 사업자는 사업 예정지의 조례가 언제 개정될지 알기 어렵다. 담당 부서가 기존 조례와 새 시행령 가운데 어느 기준을 적용할지도 미리 확신하기 어렵다. 사업자는 토지를 확보하고 설계와 계통연계 검토에 비용을 지출한 뒤에야 허가 가능성을 확인해야 할 수도 있다. 규제를 완화했음에도 사업 착수를 미루게 만드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혼선은 태양광 산업이 안정된 시기에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시장은 이미 RPS 제도 일몰과 전환시장 도입이라는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오랜 기간 국내 재생에너지 보급의 중심축 역할을 해 온 RPS 체계가 종료 수순에 들어가면서 발전사업의 수익구조도 근본적으로 달라질 전망이다. 고정가격 경쟁입찰 역시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고 이후에는 정부가 설계하는 전환시장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정부는 전환시장을 통해 재생에너지 조달 비용을 낮추고 시장 경쟁을 확대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궁금해하는 핵심 질문은 아직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 전환시장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가격이 결정되는지, REC는 어떤 기능을 갖게 되는지, 장기계약의 안정성은 어느 수준에서 보장되는지, 기존 사업자와 신규 사업자는 어떤 조건으로 참여하게 되는지 명확한 그림이 부족하다. 제도의 큰 방향은 발표됐지만 사업자가 투자 판단에 사용할 수 있는 세부 조건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태양광 발전사업은 하루아침에 시작하거나 중단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토지 확보에서 인허가, 계통 접속, 자금 조달과 시공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투자비 회수 기간도 10년을 훌쩍 넘는다. 사업자는 현재의 제도만 보는 것이 아니라 준공 이후 20년 동안 적용될 시장구조를 예상해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수익제도와 인허가제도가 동시에 바뀌면 사업자가 감당해야 할 위험은 단순히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RPS가 사라진 뒤 전력을 어떤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격거리 조례의 적용 여부마저 지역마다 달라진다면 신규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고 새로운 시장을 열겠다고 설명하더라도 사업자 입장에서는 허가 가능성과 예상 수익을 모두 계산하기 어려운 시장이다. 정책의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사업성을 판단할 기준이 없다면 민간 자본은 움직이지 않는다.
산업이 원하는 것은 무조건 높은 가격이나 규제의 전면 폐지가 아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예측 가능성이다. 이격거리가 몇 m인지, 어느 시점의 규정을 적용받는지, 허가 이후 수익을 어떤 방식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가 분명해야 한다. 규제가 다소 엄격하더라도 기준이 장기간 일관되게 유지된다면 사업자는 위험을 계산할 수 있다. 반대로 완화된 규제라도 지자체와 담당자에 따라 적용이 달라진다면 투자자는 이를 더 큰 위험으로 평가한다.
정부는 시행령 공포만으로 규제개혁이 완성된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주무 부처는 시행 전에 지자체가 정비해야 할 조례 조항과 적용 원칙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태양광 도로 이격거리의 존치 가능 여부도 모호한 해석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의 통일된 기준을 내놓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표준 조례안을 마련하고 조례 정비 시한과 진행 상황도 관리해야 한다.
이미 접수됐거나 심사 중인 허가 신청에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도 분명히 해야 한다. 시행일 이전에 신청된 사업과 시행일 이후 신청된 사업을 어떻게 구분할지, 기존 조례를 근거로 보완 요구나 불허가 처분을 받은 사업은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구체적인 지침이 필요하다. 이런 문제를 개별 지자체의 유권해석에 맡긴다면 혼선은 피하기 어렵다.
지자체도 시행령이 확정된 뒤 움직이겠다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안의 방향이 이미 제시된 만큼 현행 조례를 점검하고 개정 절차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상위법령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조항을 그대로 둔 채 민원이나 소송이 제기된 뒤에야 손질하는 것은 행정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지방의회 역시 태양광에 대한 찬반을 떠나 법령 체계의 정합성을 확보하는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정부는 RPS 일몰과 전환시장 도입 과정에서도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제도를 빠르게 바꾸는 것보다 시장이 변화에 대비할 시간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 제도 종료 시점과 새 시장의 운영방식, 장기계약 구조와 참여조건을 조기에 확정하고 충분한 경과기간을 제공해야 한다. 제도 홍보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사업자의 투자계획에 반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정과 규칙이다.
이번 이격거리 개편은 오랫동안 태양광 산업을 억눌러 온 과도한 규제를 바로잡는 중요한 조치다. 지역마다 다른 기준을 국가 차원에서 정비하고 규제 상한을 설정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주민 수용성을 이유로 사실상 사업을 금지해 온 일부 조례 관행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다만 규제를 줄였다는 선언만으로 현장의 불확실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행령과 조례 사이의 공백, 도로 이격거리의 적용 여부, 진행 중인 인허가의 처리기준을 정리하지 않으면 규제 완화의 효과는 행정 혼선에 가려질 수 있다. 여기에 RPS 일몰과 전환시장 도입까지 겹치면 사업자는 규제와 수익 양쪽에서 방향을 잃게 된다.
정책 전환기에는 속도도 중요하지만 정합성도 중요하다. 기존 제도와 새 제도를 끊김 없이 이어주고 중앙정부의 법령과 지방정부의 조례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 규제를 완화하는 일만큼 그 변화가 현장에서 일관되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일도 정부의 책임이다. 이번 개편의 성패는 시행령 문구가 아니라 시행 이후의 행정에서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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