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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일루의 시선] 원전 만능주의, 토건의 망령을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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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일루 기자
2026-07-14 13:3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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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은 말하지만 갈등은 말하지 않는 원전 옹호론자들


적대적 진영 논리로 근본적 문제 외면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원전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데이터센터가 늘어나고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니 결국 답은 원전이라는 주장이다. 원전은 안정적이고, 재생에너지는 불안정하며,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는 대규모 원전을 더 지어야 한다는 논리가 반복된다. 얼핏 합리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주장은 에너지 정책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결론에 불과하다.


오늘날 세계가 고민하는 것은 발전소의 숫자가 아니다. 어떻게 전력을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저장하고, 송전하며, 소비할 것인가라는 시스템의 문제다. 발전원은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일부 원전 옹호론은 모든 문제의 해답을 원전으로 귀결시킨다. AI도 원전, 반도체도 원전, 탄소중립도 원전이다. 마치 원전 하나만 늘리면 국가의 전력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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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생성 이미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대한민국 전력망의 가장 큰 병목은 발전소 부족이 아니라 계통이다. 송전망은 포화 상태이고 지역 간 전력 이동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재생에너지 출력 제어도 발전소가 많아서가 아니라 계통이 이를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력망 투자, 유연성 시장,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관리, 분산형 전원 확대 같은 과제는 훨씬 중요하지만 논의의 중심에서 밀려난다. 원전을 더 지으면 해결된다는 단순한 구호가 복잡한 현실을 덮어버린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주장이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다는 점이다.


원전은 버튼 하나를 누른다고 생기는 시설이 아니다. 부지 선정부터 주민 수용성, 환경영향평가, 방사성폐기물 처리, 초고압 송전선 건설까지 수많은 사회적 갈등을 동반한다. 어느 지역에 지을 것인지, 누가 위험과 부담을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좀처럼 답하지 않는다. 원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발전소 건설의 필요성은 강조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사회적 비용은 마치 다른 누군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처럼 취급한다. 발전소는 말하지만 갈등은 말하지 않는 것이다.


재생에너지를 바라보는 태도 역시 아쉽다.


정책 토론의 대상이어야 할 태양광과 풍력은 어느 순간 ‘반대편 진영’이 됐다. 기술은 경쟁할 수 있지만 정책은 공존을 설계해야 한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는 서로를 몰아내야 하는 적이 아니라 각자의 장단점을 가진 전원이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계통 투자와 저장기술을 확대하며 다양한 전원을 조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원전을 지지하려면 재생에너지를 공격해야 하는 것처럼 논쟁이 흘러간다. 과학의 이름을 빌렸지만 정작 논쟁의 방식은 정치적 진영 대립에 가깝다.


무엇보다 비현실적이다.


AI 산업이 당장 전력을 필요로 한다면, 지금 필요한 해법은 무엇인가. 원전은 수년 이상의 인허가와 건설 기간이 필요한 대형 인프라다. 오늘 부족한 전력을 내일 완공될 원전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단기 대책과 중장기 전략을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계통 확충과 분산형 전원의 활용, 저장장치 확대와 전력시장 개혁이다. 먼 미래에 완공될 원자력 발전소만 바라보며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결국 원전 만능주의의 밑바닥에는 오래된 사고방식이 자리하고 있다. 더 크게 짓고, 더 많이 건설하면 국가가 발전한다는 토건 중심의 발상이다. 원전은 거대한 토목공사와 항만, 냉각시설, 초고압 송전선이 함께 움직이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반면 분산형 에너지는 지역과 산업,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네트워크다. 미래 에너지 시스템은 더 거대한 발전소를 세우는 경쟁이 아니라 더 똑똑한 전력망을 만드는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원전을 반대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원전은 앞으로도 우리 전력 체계의 중요한 한 축일 것이다. 그러나 원전을 만능 해법으로 포장하는 순간 우리는 더 중요한 질문을 잃게 된다. 계통은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저장기술은 어떻게 키울 것인가. 지역 분산형 전원은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사회적 갈등은 어떻게 줄일 것인가.


에너지 정책은 더 이상 ‘무엇을 지을 것인가’를 묻는 시대가 아니다.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묻는 시대다. 원전 만능주의와 토건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미래 전력 시스템을 과거의 건설 논리로 설계하는 우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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