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루의 시선] AI는 전기를 먹는다… 국가 AI 시대, RE100을 다시 생각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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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공지능(AI) 정책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난다. 얼마 전 오픈AI의 샘 올트먼은 정부가 AI 기업의 지분 일부를 보유해 그 수익을 국민과 나누는 방안을 제안했다. AI가 만들어내는 부를 소수 기업이 독점하기보다 사회 전체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하자는 취지다. 한편에서는 AI 기업에 새로운 세금을 부과해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주장도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미국 정부는 첨단 AI 모델을 공개하기 전에 국가안보 차원에서 위험성을 점검하는 절차까지 마련하고 있다. AI를 둘러싼 논의는 이제 기술 경쟁을 넘어 조세, 복지, 국가안보를 아우르는 정책 의제로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논쟁의 바닥에는 하나의 공통된 질문이 숨어 있다. AI는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하는 문제다. 정답은 단순하다. AI는 막대한 양의 전기를 먹으며 성장한다. 아무리 뛰어난 알고리즘도, 아무리 성능이 우수한 반도체도 충분한 전력이 공급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오늘날 AI 경쟁은 결국 전력 확보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추진되는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계획을 보면 이러한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수백 메가와트(MW)는 물론 원전 한 기에 맞먹는 기가와트(GW)급 전력을 요구하는 프로젝트가 잇따르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데이터센터 입지는 통신망과 토지가 결정했다면, 이제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 능력이 가장 중요한 경쟁 요소가 되고 있다. AI 산업이 반도체 산업이라는 인식은 점차 ‘전력 산업’이라는 표현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재생에너지에 대한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RE100은 환경과 ESG를 상징하는 기업 캠페인으로 받아들여졌다. 탄소를 줄이고 지속가능성을 실천하기 위한 선언이라는 의미가 강했다. 그러나 AI 시대의 재생에너지는 조금 다른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태양광과 풍력 발전에 투자하는 이유를 더 이상 ESG 하나로 설명하지 않는다. AI 데이터센터를 수십 년 동안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예측 가능한 전력을 확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목적이 되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환경정책이면서 동시에 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기반시설로 성격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재생에너지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원전과 재생에너지, 에너지저장장치(ESS), 천연가스까지 모두 활용하는 무탄소 전력 체계를 고민하고 있다. 최근 자주 언급되는 CFE(Carbon Free Energy)라는 개념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AI는 24시간 멈추지 않는다. 따라서 탄소를 줄이는 것만큼이나 끊기지 않는 전력 공급 역시 중요한 가치가 된다. AI 시대의 에너지 정책은 어느 하나의 발전원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전원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의 문제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과 같은 처지에 있지 않다. 미국은 세계 최대 AI 플랫폼을 보유한 국가이지만,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를 수출하는 국가다. 우리의 고객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과 메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다. 이들은 여전히 RE100을 중요한 공급망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다. 제품의 품질과 가격만큼이나 생산 과정에서 어떤 전기를 사용했는지가 거래의 중요한 조건이 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은 미국보다 훨씬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원전이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만큼 AI 시대의 핵심 전원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라는 측면에서 원전의 역할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글로벌 RE100은 원전을 재생에너지로 인정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국내에서는 무탄소 전력으로 평가받더라도 해외 고객에게는 RE100을 충족하지 못하는 전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원전과 RE100 가운데 어느 하나만 선택하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래서 한국에서 RE100은 환경정책이 아니라 산업정책이며, 더 나아가 무역정책에 가깝다. AI 시대를 준비한다며 국가 AI와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이야기하면서도 재생에너지 공급 기반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한다면 글로벌 공급망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반대로 재생에너지 확대만을 외치면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 체계를 소홀히 한다면 AI 산업 역시 성장 동력을 잃게 된다. 어느 한쪽의 논리만으로는 해답을 찾기 어렵다.
국가 AI를 이야기하는 시대다. 그러나 AI는 전기를 먹고 자란다. 앞으로 국가 경쟁력은 얼마나 뛰어난 AI 모델을 개발했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그 AI를 안정적으로 움직일 전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세계 시장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가 또 다른 경쟁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AI와 에너지는 이제 서로 다른 정책 영역이 아니다. 국가 AI의 성공 여부는 결국 국가 에너지 전략의 완성도 위에서 결정될 것이다. 이제 RE100을 둘러싼 논쟁도 찬반의 프레임을 넘어,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를 위한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시작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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