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루의 시선] 가속페달은 정부가 밟고, 브레이크는 전력시장이 밟고 있다 > 이슈&피플

본문 바로가기

이슈&피플

[태일루의 시선] 가속페달은 정부가 밟고, 브레이크는 전력시장이 밟고 있다

profile_image
태일루 기자
7시간 48분전 0

본문

어제 전남 나주 한국전력거래소 앞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대한태양광발전사업자협회와 전국태양광발전협회, 한국풍력산업협회, 기후솔루션이 한자리에 모여 전력시장·계통운영 규칙 개정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태양광과 풍력 업계가 함께 공동행동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동안 세부 현안을 둘러싼 입장 차이는 있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 문제의식만큼은 공유하게 됐기 때문이다. 지금의 전력시장 구조가 재생에너지를 차별하고 있으며, 에너지 전환 정책과 실제 계통 운영 사이의 괴리가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는 인식이다.

정부는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대규모 재생에너지 보급과 탄소중립은 국가의 핵심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현장의 사업자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전혀 다르다. 발전소는 늘어나고 있지만 출력제어 역시 함께 늘어나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겠다고 말하면서 정작 계통이 부족해지면 가장 먼저 멈추는 것도 재생에너지다. 한쪽에서는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셈이다.


081cbc7f02ab0722aa38bcecdc22433f_1782260304_9806.png
AI 생성 이미지


많은 사람들은 출력제어를 태양광이 너무 많이 늘어난 결과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것은 현상을 원인으로 착각한 해석에 가깝다. 지금의 출력제어는 재생에너지가 많아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기존 전력 시스템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현재의 계통 운영 방식은 석탄과 LNG, 원전 등 기존 중앙집중형 발전기의 최소 출력을 우선 보장한 뒤 남는 공간을 재생에너지에 배분하는 구조다. 결국 재생에너지는 전력 시스템의 중심이 아니라 잔여 용량 안에서만 허용되는 보조적 전원으로 취급받고 있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이미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독일과 덴마크, 영국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맞춰 송전망 투자와 계통 운영 기술을 함께 발전시켜 왔다. 국가 간 전력 거래와 유연성 시장, 에너지저장장치, 수요반응 제도 등을 활용해 재생에너지를 더 많이 수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진화시키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난다고 발전소를 멈추기보다, 계통의 유연성을 높이는 데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대응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계통을 유연하게 만드는 대신 발전기를 멈추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출력제어는 가장 쉽고 즉각적인 해결책일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가장 비싼 해결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투자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민간 투자는 위축되고,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의 신뢰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단순히 출력제어 문제만이 아니다. 규칙을 만드는 과정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재생에너지의 미래를 좌우하는 전력시장과 계통운영 규칙이 만들어지는 위원회에 정작 재생에너지 업계를 대표하는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특정 산업의 특혜를 요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거버넌스와 절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해관계자가 배제된 상태에서 만들어진 규칙은 결국 또 다른 갈등을 낳을 수밖에 없다.

에너지 전환은 태양광 패널 몇 장을 더 설치한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진짜 전환의 대상은 발전원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발전원은 바뀌었는데 전력시장과 계통 운영 방식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충돌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재생에너지가 많아져서 출력제어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변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출력제어가 늘어나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재생에너지를 멈추는 기술이 아니라 재생에너지를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모순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에너지 전환의 성공 여부는 더 많은 발전소를 짓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발전소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전력 시스템을 얼마나 빠르게 혁신하느냐에 달려 있다.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49 건 - 1 페이지

열람중[태일루의 시선] 가속페달은 정부가 밟고, 브레이크는 전력시장이 밟고 있다

어제 전남 나주 한국전력거래소 앞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대한태양광발전사업자협회와 전국태양광발전협회, 한국풍력산업협회, 기후솔루션이 한자리에 모여 전력시장·계통운영 규칙 개정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태양광과 풍력 업계가 함께 공동행동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

태일루 기자 7시간 48분전 38

태양광•풍력 산업계 한 뜻으로 "재생에너지 가로막는 전력운영규칙 개정하라" - 전태협 등 공동 기자회견 개최

태양광·풍력 양대 산업 협회 공동행동... "정부는 100GW 가속페달, KPX 규칙은 화력 우대 브레이크", "재생에너지의 미래 좌우하는 규칙, 정작 재생에너지 당사자는 배제된 채 결정" 최소발전용량 심의 투명성·자기계약 추가 보상•KPX 거버넌스 등 3대 …

박담 기자 7시간 2분전 31

[태일루의 시선] 스리백과 포백보다 더 중요한 것

월드컵이 떠올리게 한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의 과제월드컵 기간이다. 태양광과 전력망, 재생에너지 정책을 주로 다루는 지면에서 갑자기 축구 이야기를 꺼낸다고 독자들께서 의아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 친환경 전문지에서 웬 축구 칼럼이냐고 핀잔을 주셔도 달게 받겠다.다만 축…

태일루 기자 2026.06.18 83

"수요 줄어드는데 또 확장?"… 시민사회, 당진 LNG터미널 3단계 중단 촉구

당진 지역 시민사회가 한국가스공사의 당진 LNG터미널 3단계 확장 계획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가스 수요 감소와 기존 터미널의 낮은 이용률을 근거로 대규모 추가 투자가 좌초자산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환 정책 마련을 촉구했다.출처 …

박담 기자 2026.06.16 38

[태일루의 시선] 전력망 운영 개선 없이 출력제어만 하는 대한민국....

독일은 세계에서 전기요금이 비싼 나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럼에도 독일은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멈추지 않고 있다. 단순히 환경을 중시하는 국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독일이 바라보는 에너지 산업의 중심이 발전소가 아니라 전력망에 있기 때문이다.한국에서는 태양광 산업…

태일루 기자 2026.06.07 83

[인터뷰] 전태협 김숙 사무총장 “늘리라며 강제 차단… 거꾸로 가는 재생 에너지 행정”

 국내 재생에너지 산업이 사상 유례없는 계통 병목 현상과 마주했다. 봄철 기상 여건에 따른 태양광 발전량 급증은 전력 계통의 수용 한계와 충돌하며 육지 전역의 상시적인 ‘출력제어’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호남권을 중심으로 한 ‘계통 절벽’ 현상은 신규 …

태일루 기자 2026.05.27 480

“100GW”를 말하면서 “100m”를 묶었다…재생에너지 기본계획, 이격거리 시행령이 남긴 모순

정부가 「제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을 통해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보급과 2035년 발전 비중 30% 이상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수도권·충청·강원권 중심의 대규모 프로젝트 발굴과 권역별 목표 제시, 수요지 인접형 보급 전략까지 담겼다는 점에서 방향성 자체는…

태일루 기자 2026.05.26 84

[태일루의 시선]“화력발전 위주의 보상체계, 재생에너지 확대 뒤 숨은 청구서…출력제어 비용 누가 내나”

한전 재무위기는 반복된다. 국제 연료가격이 오르면 적자가 커지고, 한전채 발행이 늘어나며, 전기요금 인상 논쟁이 시작된다. 위기가 올 때마다 원인은 전기요금에서 찾는다. 전기를 싸게 팔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최근 기후솔루션이 발표한 「한국전력 재무위험 분석 …

태일루 기자 2026.05.22 349

[태일루의 시선] 호르무즈 쇼크가 드러낸 보수 언론의 에너지 안보 착각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 경제의 급소다.유조선 한 척이 멈추면 환율이 흔들리고 물가가 움직인다. 중동발 위기는 언제나 한국 산업의 구조적 불안을 드러냈다. 이번 호르무즈 쇼크 역시 마찬가지다. 공급망은 흔들렸고 국제 유가는 급등했다. 한국 경제는 다시 한번 수입 에너지 의…

태일루 기자 2026.05.06 134

[태일루의 시선] 선거철 재생에너지 공약, 카피는 넘치는데 실행력은 '의문'

재생 에너지가 정치의 언어로 들어왔다. 지난해 대선과 비교하면 변화는 분명하다. 반대와 비판의 대상이던 재생에너지는 이제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거의 모든 후보가 태양광과 풍력, RE100 산업단지를 말한다. 방향에 대한 논쟁은 사실상 끝났다.문제…

태일루 기자 2026.04.20 135

“재생에너지 늘리라더니 낮엔 멈춰라…태양광만 희생되는 구조”

경북 영천에서 500kW급 태양광 발전소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16일 낮 한전으로부터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금일 12시부터 전력거래소의 긴급 출력제어 지시로 출력제어가 시작되었습니다. 14시에 종료 예정이나 기상 여건에 따라 변동될 수 있습니다.” 이어 “출력제어…

정운 기자 2026.04.17 171

[태일루의 시선]“지구 온도 1도 오를 때마다 산불 14% 증가…해답은 태양광”

최근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극단적인 산불 재난은 더 이상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지난 2월, 팀머만 단장이 이끄는 IBS 기후물리연구단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의미심장한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지구 온도가 1도 상승할 때마다 전 세계…

태일루 기자 2025.04.02 338

[태일루의 시선] 임야를 망친 건 박근혜였고, 프레임을 판 건 윤석열이다

문재인은 억울하다. 태양광 난개발의 책임이 문재인 정부에 쏟아졌지만, 원인을 따져보면 엉뚱한 방향이다. 산을 깎고 숲을 밀어 태양광을 깔자고 한 건 박근혜였다. ‘신재생 확대’란 명분 아래, 산지 일시사용 허가 기준을 완화하고, 임야를 발전소 부지로 무차별 개방…

태일루 기자 2025.06.07 489

[태일루의 시선] 이재명의 햇빛 vs 윤석열의 그늘, 태양광 산업의 명암

 에너지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세계가 탄소중립을 향해 가속화하고 있는 이 시점에, 한국 정치권 역시 에너지 정책을 두고 뚜렷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태양광 중심 공약과 윤석열 정부의 태양광 산업 규제는 …

태일루 기자 2025.06.03 444

[태일루의 시선] 13일 앞둔 대선, 재생에너지 운명 가를 중대 분기점

13일 남았다. 태양광 사업자들에게는 단순한 정치 일정이 아니다. 지난 5년의 왜곡과 억울함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이것은 어느 한 산업군의 명운만을 건 싸움도 아니고 원전 진영과 태양광 진영 간의 적대적 대결도 아니다. 국가 에너지 정책은 이분법으로 나눌 …

태일루 기자 2025.05.21 328
기사 전체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