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루의 시선] 가속페달은 정부가 밟고, 브레이크는 전력시장이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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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전남 나주 한국전력거래소 앞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대한태양광발전사업자협회와 전국태양광발전협회, 한국풍력산업협회, 기후솔루션이 한자리에 모여 전력시장·계통운영 규칙 개정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태양광과 풍력 업계가 함께 공동행동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동안 세부 현안을 둘러싼 입장 차이는 있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 문제의식만큼은 공유하게 됐기 때문이다. 지금의 전력시장 구조가 재생에너지를 차별하고 있으며, 에너지 전환 정책과 실제 계통 운영 사이의 괴리가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는 인식이다.
정부는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대규모 재생에너지 보급과 탄소중립은 국가의 핵심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현장의 사업자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전혀 다르다. 발전소는 늘어나고 있지만 출력제어 역시 함께 늘어나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겠다고 말하면서 정작 계통이 부족해지면 가장 먼저 멈추는 것도 재생에너지다. 한쪽에서는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은 출력제어를 태양광이 너무 많이 늘어난 결과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것은 현상을 원인으로 착각한 해석에 가깝다. 지금의 출력제어는 재생에너지가 많아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기존 전력 시스템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현재의 계통 운영 방식은 석탄과 LNG, 원전 등 기존 중앙집중형 발전기의 최소 출력을 우선 보장한 뒤 남는 공간을 재생에너지에 배분하는 구조다. 결국 재생에너지는 전력 시스템의 중심이 아니라 잔여 용량 안에서만 허용되는 보조적 전원으로 취급받고 있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이미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독일과 덴마크, 영국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맞춰 송전망 투자와 계통 운영 기술을 함께 발전시켜 왔다. 국가 간 전력 거래와 유연성 시장, 에너지저장장치, 수요반응 제도 등을 활용해 재생에너지를 더 많이 수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진화시키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난다고 발전소를 멈추기보다, 계통의 유연성을 높이는 데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대응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계통을 유연하게 만드는 대신 발전기를 멈추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출력제어는 가장 쉽고 즉각적인 해결책일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가장 비싼 해결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투자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민간 투자는 위축되고,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의 신뢰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단순히 출력제어 문제만이 아니다. 규칙을 만드는 과정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재생에너지의 미래를 좌우하는 전력시장과 계통운영 규칙이 만들어지는 위원회에 정작 재생에너지 업계를 대표하는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특정 산업의 특혜를 요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거버넌스와 절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해관계자가 배제된 상태에서 만들어진 규칙은 결국 또 다른 갈등을 낳을 수밖에 없다.
에너지 전환은 태양광 패널 몇 장을 더 설치한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진짜 전환의 대상은 발전원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발전원은 바뀌었는데 전력시장과 계통 운영 방식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충돌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재생에너지가 많아져서 출력제어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변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출력제어가 늘어나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재생에너지를 멈추는 기술이 아니라 재생에너지를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모순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에너지 전환의 성공 여부는 더 많은 발전소를 짓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발전소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전력 시스템을 얼마나 빠르게 혁신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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