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루의 시선] 전쟁이 흔드는 전기요금, 태양이 답이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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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세계 경제의 심장부로 떠올랐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 이후 이란 혁명수비대가 해협 봉쇄를 선언하면서 중동 에너지 공급망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선박 운항은 급감했고 보험사들이 전쟁 위험 보험을 철회하면서 해상 운송 자체가 병목 상태에 빠졌다. 세계 원유 교역량의 약 4분의 1이 통과하는 이 좁은 바다가 멈추면 에너지 시장 전체가 흔들린다. 실제로 이번 사태 이후 국제유가는 단기간에 6~7% 상승했고 유럽과 아시아의 천연가스 가격은 약 40% 급등했다.
이 사건이 한국에 특히 민감하게 작용하는 이유는 구조 때문이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약 62%를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한다. LNG 역시 20~30%가 이 경로를 통해 들어온다. 한마디로 말해 중동의 긴장은 곧 한국의 에너지 가격 리스크다. 전쟁이 시작되면 원유 가격이 오르고 LNG 가격이 오르고 결국 전기 가격까지 압박받는다. 에너지 위기가 산업 위기로 번지는 전형적인 구조다.
전력 시장에서는 이 충격이 더욱 직접적이다. 한국 전력 도매가격(SMP)은 발전원 중 가장 비싼 연료가 결정한다. 대부분의 시간 그 역할을 하는 것은 LNG 발전이다. LNG 가격이 급등하면 전력 가격도 함께 올라간다. 이번 사태처럼 가스 가격이 크게 상승하면 전력 도매가격은 단기간에 큰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 전기요금이 곧바로 오르지 않더라도 비용은 누군가가 부담해야 한다. 그 부담은 한전의 적자가 되거나 결국 소비자 요금으로 돌아온다.
이 구조는 한국 경제가 가진 가장 오래된 약점을 보여준다. 한국의 에너지 체계는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석유도 수입, 가스도 수입, 석탄도 수입이다. 국제 정세가 흔들리면 산업 비용이 동시에 올라간다. 기업의 생산비가 올라가고 물가가 상승하고 무역수지는 악화된다. 전쟁이 한국 영토에서 일어나지 않아도 경제는 충분히 타격을 받는다.
이 지점에서 재생 에너지의 의미가 달라진다. 재생 에너지는 환경 정책의 상징처럼 이야기되지만 실제로는 에너지 안보 정책에 가깝다. 태양광과 풍력은 연료를 수입하지 않는다. 국제 유가가 올라가도 발전 단가는 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재생 에너지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전력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줄이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그렇다고 해서 재생 에너지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태양광은 밤에 전기를 생산하지 못한다. 풍력은 바람이 불어야 돌아간다. 전력망 안정성과 저장 기술이 함께 따라와야 한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채택하는 구조가 ‘원전 + 재생에너지 + 가스’의 혼합 체계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원전은 안정적인 기저 전력을 공급하고 재생 에너지는 연료비를 줄이며 가스 발전은 수요 변동을 조절한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한국의 에너지 논의가 자주 비틀린다는 점이다. 원전과 재생 에너지를 서로 대체 관계처럼 몰아가며 정치적 진영 싸움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부 원전 중심 이해 집단은 태양광을 비경제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에너지처럼 단순화해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현실적인 에너지 전략을 만드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전이 필요한 이유가 있듯이 재생에너지도 필요한 이유가 있다. 서로의 역할이 다른 에너지원을 이념적 대립 구도로 묶는 순간 정책 판단은 흐려진다.
에너지 정책은 진영 논리가 아니라 국가 경제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원전은 안정적인 기저 전력을 제공한다. 재생 에너지는 연료 수입을 줄인다. 가스 발전은 계통 유연성을 확보한다. 이 세 축이 균형을 이루는 구조가 에너지 안보와 전력 가격 안정에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이번 중동 사태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전쟁은 멀리서 일어나지만 에너지 가격은 국내에서 움직인다. 그리고 그 가격은 결국 전기요금으로 돌아온다. 태양광 패널 하나가 중동의 분쟁을 막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 분쟁이 전기요금으로 전이되는 속도는 늦출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논의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에너지를 수입할 것인가, 아니면 생산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을 정치적 대립이 아니라 경제적 현실 위에서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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