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루의 시선] 언제까지 에너지 위기를 반복할 것인가 > 이슈&피플

본문 바로가기

이슈&피플

[태일루의 시선] 언제까지 에너지 위기를 반복할 것인가

profile_image
태일루 기자
2026-03-15 08:17 0

본문

중동 정세가 흔들릴 때마다 한국 경제는 같은 질문을 받는다. 에너지 안보는 안전한가. 그러나 최근 정부와 연구기관의 진단은 조금 달라졌다. 문제는 가격이 아니라 구조라는 지적이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전기요금과 산업 비용이 동시에 흔들리는 이유는 단순한 시장 변동이 아니라 에너지 공급 체계 자체가 외부 변수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 연구기관 기후솔루션이 발표한 이슈브리프는 한국의 에너지 공급 구조가 지정학적 충격에 취약하다고 분석한다. 한국은 원유의 약 70%, LNG 18%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여온다. 해협이 한 달만 봉쇄돼도 LNG 8항차와 원유 45항차의 도입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에너지 위기는 갑자기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라 이미 설계된 공급 구조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16238af9b078d50d946e5b0ae276bca2_1773530226_2686.png
AI 생성 이미지

투자의 방향 역시 같은 구조를 강화해 왔다. 지난 10여 년 동안 국내 공적 금융이 화석연료 분야에 투입한 자금은 약 141조 원이다. 같은 기간 재생에너지 투자 규모는 약 11조 원에 그쳤다. 화석연료 인프라에 집중된 투자 구조가 유지되면서 외화 유출과 전력 비용 상승, 전력 공기업의 재무 부담이 동시에 커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에너지 정책의 관성이 금융 구조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의미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국무회의에서 이 문제를 직접 언급했다. 국제유가 상승과 중동 긴장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를 에너지 안보 전략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발언이었다.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 체계를 구축해야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경제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다.

대통령이 제시한 방향은지산지소였다. 전력이 생산되는 지역에서 소비하도록 산업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재생에너지 생산 지역과 산업 입지를 연결하고 전력 요금도 지역별 차등 구조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언급이 뒤따랐다. 송전망 건설이 지연되는 현실에서 전력 생산과 소비의 공간 구조를 동시에 바꾸겠다는 접근이다.

세계 주요국은 이미 에너지 체계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 유럽연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추진한 REPowerEU 정책을 통해 가스 수요를 크게 줄였다. 2022년 이후 약 700억㎥ 규모의 가스 수요를 절감하며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낮췄다. 에너지 효율 개선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동시에 추진한 결과다.

중국의 속도는 더 빠르다. 중국은 2024년 한 해 동안 약 434GW의 재생에너지 설비를 신규 설치했다. 이는 전 세계 신규 재생에너지 증가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규모다. 태양광과 풍력이 동시에 확대되면서 중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환경 정책이 아니다. 에너지 공급 구조가 곧 산업 경쟁력으로 연결되는 시대다. 전력 가격이 안정된 지역으로 산업이 이동하고 재생에너지 생산 지역에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에너지 정책과 산업 정책이 하나의 전략으로 결합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역시 선택의 시간이 길지 않다. 공적 금융의 투자 방향을 재생에너지와 전력망 인프라로 전환하고 화석연료 인프라 투자에 대한 리스크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 에너지 안보는 더 많은 연료를 확보하는 문제가 아니다.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전력 시스템을 구축하는 문제다. 익숙한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위기는 다시 반복된다.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64 건 - 1 페이지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2040년에도 석탄은 ‘안보전원’으로 남기고 미래 불확실한 수요로 화석연료를 더할 …

기후솔루션이 정부가 수립 중인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두고 미래 전력수요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LNG 발전을 확대하고 폐지 대상 석탄발전까지 ‘안보전원’으로 남길 경우 정부가 내세운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대전환’의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기후솔루션은 2…

정운 기자 21시간 53분전

[태일루의 시선] 전기는 필요한데, 어디에도 지을 곳이 없다

대한민국이 AI 강국을 외치고 있다. 정부도 기업도 인공지능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꼽는다. AI 산업을 이야기하면 첨단 반도체와 데이터가 먼저 떠오르지만 이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전기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컴퓨팅 능력의 경쟁이고 컴퓨팅 능력은 막대한 전력 소비를 동…

태일루 기자 2026.08.20

30년 전부터 기후위기 알았던 한전…누적배출 비용 4870억 달러 이상·조기 사망 위험 35만 명 기여

1996년 한전 경영진단, 기후규제·화석연료 위험 이미 경고…그 뒤 30년간 화력발전 확대 이어와한전·발전5사 2011~2023년 누적배출 약 26억 톤…전문가 분석 “사회적 비용 최소 4870억 달러”기온 관련 조기 사망 위험에도 약 35만 명 기여 추정…“몰랐던 위…

박담 기자 2026.08.19

폭염·가뭄 시대 원전의 숨겨진 약점…먼저 필요한 것은 막대한 '냉각수'

기후위기가 심화되면서 원자력발전의 또 다른 취약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바로 막대한 냉각수 의존성이다. 원전은 발전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는 장점 때문에 탄소중립 시대의 주요 전원으로 거론되지만, 안정적인 가동을 위해서는 대규모 수자원을 지속적으로…

정운 기자 2026.08.10

[태일루의 시선] 송전선만이 답은 아니다…수력발전이 여는 재생에너지 계통 혁신

EU ‘25GW 하이브리드 발전’이 한국 전력정책에 던지는 과제재생에너지 확대의 최대 걸림돌은 발전설비가 아니라 계통이라는 지적이 다시 제기됐다. 국제 에너지 싱크탱크 Ember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유럽 주요 국가들이 기존 수력발전소의 계통 접속설비를 풍력·태양광…

태일루 기자 2026.08.05

[태일루의 시선] 태양광 이격거리 개편의 마지막 과제

태양광 산업이 또 하나의 중대한 제도 변화를 앞두고 있다. 정부는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시행령을 개정해 지방자치단체마다 제각각 운영해 온 이격거리 규제를 국가 기준으로 정비할 방침이다. 지역에 따라 300m에서 500m, 일부 지역에서는 1km…

태일루 기자 2026.07.27

[태일루의 시선]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대, 내재 탄소를 설명하지 못하면 국경을 넘지 못한다

2026년 1월부터 탄소는 실제 비용이 된다. 유럽연합이 도입한 탄소국경조정제도, 즉 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이 내년 1월 1일부터 본격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경을 넘는 제품에 탄소 배출량만큼의 비용이 부과된다. …

태일루 기자 2025.12.29

출력제어 5개월간 316회·16만1805MWh…송전망 병목이 원인인데.. '재생 에너지 탓', '원전 확대'…

전력망 부족으로 발전소가 전기를 생산하고도 가동을 멈추는 출력제어가 올해 들어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5월 출력제어는 316회, 제어량은 16만1805MWh를 기록했다. 불과 5개월 만에 지난해 연간 기록인 281회와 16만9812MWh의 95.3%에 도달했…

박담 기자 2026.07.23

[태일루의 시선] "빨리 참여하라"…답보다 홍보만 남긴 마지막 RPS 고정가격 경쟁입찰 설명회

마지막 RPS 입찰 설명회, 시장에 확신보다 불안만 남기다올해 태양광 고정가격계약 경쟁입찰이 시작됐다. 정부는 모집 물량 1000MW를 공고하고 상한가격을 kWh당 147.6원으로 지난해보다 5% 인하했다. 태양광 균등화발전비용(LCOE)이 낮아졌다는 것이 이유다.그러…

태일루 기자 2026.07.21

메가프로젝트 전력수요 논란…기후단체 "화석연료 확대 명분 돼선 안 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4755조원 규모의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둘러싸고 기후·에너지 시민단체들이 대규모 산업 육성이 화석연료 발전 확대의 명분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기후솔루션과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녹색전환연구소는 15일 공동 입장문을 통해 "…

정운 기자 2026.07.15

[태일루의 시선] 원전 만능주의, 토건의 망령을 벗어나야 한다

원전은 말하지만 갈등은 말하지 않는 원전 옹호론자들적대적 진영 논리로 근본적 문제 외면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원전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데이터센터가 늘어나고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니 결국 답은 원전이라는 주장이다. 원전은 안정적이고, 재생에너…

태일루 기자 2026.07.14

[태일루의 시선] AI는 전기를 먹는다… 국가 AI 시대, RE100을 다시 생각할 때

미국의 인공지능(AI) 정책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난다. 얼마 전 오픈AI의 샘 올트먼은 정부가 AI 기업의 지분 일부를 보유해 그 수익을 국민과 나누는 방안을 제안했다. AI가 만들어내는 부를 소수 기업이 독점하기보다 사회 전체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구조를…

태일루 기자 2026.07.08

전기차 판매는 질주하는데 충전은 '대기'… 인프라 없이 규제만 앞서는 정부 정책

올해 상반기 전기차 판매 42.7% 증가… 점유율 역대 최고충전기는 49만기 넘어섰지만 급속충전기 부족·2,700기 장기 방치PHEV 7시간 제한 등 규제 강화…"인프라 확충이 먼저" 지적고유가와 정부 보조금, 완성차 업체들의 가격 인하가 맞물리면서 국내 전기차 시장이…

정운 기자 2026.07.03

[태일루의 시선] 수도권 중독증과 기득권 카르텔, ‘3대 메가프로젝트’의 발목을 잡지 마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총 4,755조원 규모의 초대형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평택·용인과 호남, 충청, 영남권 반도체·AI 사업에 2,655조원을 투자하고, SK그룹은 전국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에 2,100조원을 투입한다. 청와…

태일루 기자 2026.06.30

“ESG 펀드인데 화석연료 투자?”…한국, ‘그린워싱 규제 공백’ 드러나

글로벌 ESG 펀드 시장, 2019년 5100억 달러 → 2025년 4조 1300억 달러로 약 8배 성장 국내 ESG 펀드 시장도 9조 3800억 원 규모로 확대, 전년 대비 37% 증가 미국·EU·싱가포르, ESG 펀드에 최소 70~80% 투자 기준…

정운 기자 2026.06.29
기사 전체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