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분석] K-GX 1,000조 원 투자, 재생에너지 100GW의 성패는 민간 투자와 전력망에 달렸다
본문
철강·석유화학 등 산업 탈탄소 전환 본격화…민간 투자 활성화와 전력계통 확충이 관건
정부가 산업 전반의 탈탄소 전환을 위해 향후 10년간 1,000조 원 이상의 재정·금융 지원을 추진한다. 철강과 석유화학, 해운 등 탄소 다배출 산업의 생산공정을 저탄소 방식으로 전환하고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용량 100GW를 달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산업 경쟁력 강화와 탄소중립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목표 달성을 뒷받침할 민간 투자 활성화와 전력계통 확충의 현실성이 정책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지난 7일 발표한 'K-GX(한국형 녹색전환) 전략'은 산업구조의 저탄소 전환을 국가 성장전략의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 재정 약 200조 원과 기후금융 790조 원 이상을 공급하고 민간기업의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를 지원해 친환경 산업 생태계를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철강산업에서는 기존 석탄 기반 고로를 수소환원제철 방식으로 전환한다. 2030년까지 연산 30만 톤급 실증기술을 개발하고 2036년까지 250만 톤급으로 확대해 2050년 전환을 완료한다는 목표다. 석유화학산업에서는 나프타분해시설(NCC)의 전기화를 추진한다. 2028년까지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대규모 실증을 거쳐 2040년 이후 상용화할 계획이다. 해운 분야에서는 친환경 선박 확대와 대체연료 공급망 구축, 항만시설 전동화 등을 추진한다.
이러한 산업 전환은 필연적으로 전력 수요 증가를 수반한다. 수소환원제철에 필요한 청정수소 생산과 NCC 전기화에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산업 부문의 실질적인 탄소 감축을 위해서는 생산설비 전환과 함께 안정적인 저탄소 전력 공급이 뒷받침돼야 한다. 정부가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달성을 주요 과제로 제시하고 태양광·풍력 입지 확보와 송전망 확충을 추진하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설비용량 확대 목표가 곧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 태양광 발전은 민간 자본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금융비용과 계통 접속 지연, 출력제어에 따른 수익 감소 위험 등으로 신규 투자에 상당한 부담이 존재한다. 발전사업자가 적정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정부가 제시한 보급 목표 역시 달성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정부가 추진하는 RPS 폐지와 계약시장 전환은 민간 투자에 중요한 변수다. 장기계약은 발전사업자의 수익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지만 실제 계약 물량과 낙찰가격에 따라 투자 유인 효과는 크게 달라진다. 발전단가 인하에 지나치게 무게를 둘 경우 오히려 신규 투자를 위축시킬 가능성도 있다. 산업계의 탈탄소 전환에는 막대한 지원을 약속하면서 청정전력 생산을 담당할 발전사업자에게는 지속적인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정책이 과연 균형을 갖추고 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력계통 확충 역시 현실적인 과제다. 정부는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등 대규모 송전망 건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송전선로의 입지 선정과 주민 수용성 확보, 인허가 및 건설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확대되더라도 이를 수용할 송전망이 제때 구축되지 못한다면 실제 전력 공급에는 한계가 발생한다. 특히 발전설비가 집중되는 지역과 전력 소비가 많은 수도권 및 산업단지 사이의 지리적 불균형은 계통 확충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계통망 부족은 민간 투자 위축으로도 이어진다. 계통 접속이 지연되면 발전소 건설 이후에도 상업운전을 시작하지 못할 수 있으며, 출력제어가 확대되면 기존 발전소의 수익성마저 악화된다. 이는 금융기관의 대출 심사와 신규 사업자의 투자 판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결국 전력망 부족이 민간 투자 감소로 이어지고, 투자 감소가 다시 재생에너지 확대를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ESS 확충과 계통 보강을 위한 구체적인 지원책이 필요한 이유다.
산업별 전환 일정과 전력 공급계획의 연계도 중요하다. 철강과 석유화학 설비의 전기화가 본격화되는 시점에 필요한 청정전력과 송전망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산업 전환 자체가 지연될 수 있다. 따라서 산업별 탈탄소 로드맵에는 기술개발과 설비 전환 일정뿐 아니라 재생에너지 공급 규모와 전력망 건설 일정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
결국 K-GX 전략의 성패는 1,000조 원이라는 투자 규모나 100GW라는 설비용량 목표 자체에 있지 않다. 민간 자본이 움직일 수 있는 합리적인 수익구조를 마련하고 생산된 전력을 필요한 곳으로 전달할 전력망을 적기에 구축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정부가 산업 전환을 국가 생존전략으로 규정한 만큼 재생에너지 공급 기반에도 그에 상응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12월 발표될 산업별 로드맵은 선언적인 목표를 반복하기보다 민간 투자 활성화와 계통 확충의 실행 가능성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계획이 돼야 할 것이다.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