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루의 시선] 여전한 ‘원전 특혜’와 ‘재생에너지 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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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동시 확대를 골자로 한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정작 이를 뒷받침할 계통의 유연성 설계가 부재하면서 전력 현장에서는 심각한 형평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최근 보도된 기후에너지환경부 내부 문건과 한국수력원자력의 행보는 현재의 에너지 정책이 특정 전원에 치우친 ‘비용 떠넘기기’로 흐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라는 두 축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전력 시스템 전체의 재설계가 선행되어야 함에도, 정부는 특정 전원의 손실만을 보전하려는 편향된 사후 처방에 급급한 실정이다.
최근 한 탐사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과 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한 공급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전의 ‘출력 감발(탄력운전)’을 공식화하고 있다. 기후부 내부 문건에는 원전 출력을 최대 80%까지 줄여야 한다는 구체적인 수치가 적시되었으며 한수원은 이미 수백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원전 출력을 더 정교하게 줄이는 기술 개발에 나섰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원전의 경제성 하락과 기기 피로도에 따른 손실을 보전해주기 위한 ‘보상 체계’ 마련이 수면 아래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국가 기저전원으로서의 원전이 가진 경제적 우위를 정책적 보조금으로 억지로 유지시키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원전 보상 논의는 그동안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이 감내해온 처우와 비교할 때 명백한 ‘특혜’이자 시장 차별이다. 제주와 호남 지역의 태양광 및 풍력 발전 사업자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전력 계통 안정을 이유로 강제적인 ‘출력 제한’ 조치를 당해왔다. 이로 인해 발생한 누적 손실은 이미 수백억 원대에 달하며 일부 사업자는 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정부와 한국전력은 “계통 운영상 불가피한 공익적 조치”라는 명분을 내세워 단 한 차례의 손실 보상도 실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 관련 행정소송에서 법원은 이를 ‘사법상 계약의 이행’으로 간주하며 사업자들의 청구를 각하했다.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에게는 가혹한 법적 잣대를 대면서 원전에는 별도의 보상 규정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형평성이라는 민주적 가치를 정면으로 위배한다.
똑같이 계통 안정을 위해 발전량을 줄이는데 원전은 ‘손실 보전’을 논의하고 재생에너지는 ‘무보상’을 강요받는 현실은 전력 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왜곡이다. 원전은 그동안 낮은 발전 단가를 근거로 경제성을 인정받아 왔으나 일상적인 탄력 운전이 도입되어 이용률이 급감하고 여기에 보상 비용까지 투입된다면 그 경제적 실체는 사라지게 된다.
그럼에도 정부가 원전 보상 체계를 서두르는 것은 탄력운전의 위험성과 비경제성을 은폐하고 ‘원전 비중 확대’라는 미리 정해진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적 도박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특히 원전의 잦은 출력 조절은 설비 수명 단축과 안전성 저하라는 잠재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안전 검증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이러한 모순의 근본 원인은 전력 시스템 전체의 ‘유연성(Flexibility)’ 확보라는 본질적인 과제를 외면한 데 있다. 현재의 경직된 계통 구조에서는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충돌이 물리적으로 필연적이며 그 피해는 늘 조직화되지 않은 민간 발전사업자나 미래 세대의 전기요금 부담으로 전가된다. 에너지저장장치(ESS)의 파격적인 확충이나 시간대별 수급 상황을 반영하는 실시간 전력 시장(LMP) 도입, 그리고 산업용 전력의 수요 관리(DR)와 같은 구조적 해법을 마련하는 대신, 특정 전원에만 유리한 보정 계수를 설계하는 방식은 시장의 불확실성만 키울 뿐이다. 유연성 자원은 단순히 보조 설비가 아니라 전력 시스템을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로 다루어져야 한다.
정부는 이제라도 ‘원전 중심주의’의 독단에서 벗어나 유연성 확보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 투명하게 공론화해야 한다. 재생에너지의 출력 제한 피해를 방치하면서 원전의 감발 손실만을 세금이나 요금으로 보전해주겠다는 발상은 공정한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는 처사다.
전력망은 특정 전원의 전유물이 아니며, 유연성이라는 공적 기능이 담보되지 않는 한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상생은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지금 시급한 것은 특정 전원을 위한 특혜성 보상안이 아니라 모든 전원이 계통 기여도에 따라 공정하게 보상받고 책임지는 유연한 시스템으로의 전면적인 재설계다. 정책적 일관성과 시장의 신뢰를 잃은 에너지 정책은 결국 국가 산업 경쟁력의 약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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