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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헤일메리

[오동진의 헤일메리] 아기를 낳지 못하는 것이 플라스틱 때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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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2시간 46분전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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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이게 환경이나 기후 문제를 다루는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미세 플라스틱 물질이 여성들의 난임을 초래하고 (정확하게는 남성들의 정자 양을 현저히 떨어뜨림으로써) 인구를 절감시키는 현상과 질병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건 ‘솔라 타임즈’가 아니라 ‘보건협회 기관지’ 같은 곳에 써야 하는 게 아닐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영화가 흥미진진하다. 멈추지 않고 보게 된다. 그리고 결국 플라스틱 유해 물질이 환경 호르몬의 문제이자 거대한 환경 오염 문제임을 깨닫게 한다. 다큐멘터리는 이런 것이다. 찰진 구성력으로 사람들을 학습하게 하고 세상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게 하는 것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디톡스>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이, 석유를 화학적으로 제조 개발하는 과정에서 양산되게 된, 말 그대로 현대 석유 자본주의 사회의 산물이고, 결국 그렇다면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서는 결국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작품이다. 당당히, 솔라타임즈에 입성해야 할 영화라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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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Rotten Tomatoes


‘플랜테이션 컨트리’로 통하던 루이지애나 지역(그 옛날 흑인 노예들을 착취하며 경작하던 대규모 목화밭을 떠올려 보라) 곳곳이 공장으로 하나하나 둘러싸이게 되었다는 에피소드는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얘기 중 하나이다. 이 대목에서는 루이지애나 레이크찰스에서 활동하는 흑인 목사이자 환경운동가의 탐사와 증언이 이어진다. (카메라는 미 전역을 다닌다) 그는 루이지애나주의 흑인 68%가 플라스틱을 만드는 석유화학 공장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루이지애나주의 배턴루지에서 뉴올리언스에 이르는 지역을 이 목사는 이른바 ‘암 골목(cancer Alley)’이라 부른다고 전한다. 목사는 차를 타고 가면서 흑인 여성인 샤론 라빈의 말을 경청한다. 샤론은 ‘라이즈 세인트제임스’의 창립자이다. 그녀는 목사에게 자기 친구가 암으로 죽었고 회사 동료도 암으로 죽었으며 이웃도 암으로 죽었다고 줄줄이 얘기한다. 샤론의 말을 듣던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이 짧은 길을 차로 타고 오는 동안 당신은 내게 암으로 죽은 사람에 대해 40명은 얘기한 것 같아요.” 그러자 샤론은 얘기한다. “그래서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싸우자. 맞서 싸우자고 말이죠.”


다큐 <플라스틱 디톡스>는 샤나 스완이라는 미국 국립과학원에서 젊은 시절 연구분석관으로 일했던 연구자이자 사회운동가의 실험에 관한 얘기로 시작한다. 그녀는 미국 전역의 불임 부부 6쌍을 대상으로 90일간 ‘플라스틱 디톡스’의 실험을 이어 간다. 그녀의 독특하지만, 그리고 그녀 덕분에 많은 연구자에게 공유된 하나의 실험 결과로서, 미세 플라스틱 유해 물질이 남성의 테스토스테론에 영향을 미쳐 정자 수를 감소시키거나 극소량으로 만든다는 얘기를 ‘퍼뜨리고’ 다닌다. 현대사회 모든 불임 부부의 원인은 상당 부분 남성들의 정자 양이 줄어드는 데 있고 그 원천이 플라스틱이라는 것이다. 샤나 스완은 아무리 중요한 연구 결과라 하더라도 ‘연구원들에게만’ 머물거나 ‘학술지에만’ 머무는 현실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샤나 스완이 대중들을 직접 만나겠다고 생각한 이유이다. 그녀는 각지를 다니며 실험에 참여하는 불임부부들을 직접 만나고, 상담하고, 치료책을 함께 찾아간다. 그녀의 처방은 주변의 플라스틱을 가능한 한 사용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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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Rotten Tomatoes


<플라스틱 디톡스>가 놀라운 것은, 그리고 그건 어쩌면 늘 생각했던 문제여서, 일상화된 것일 수도 있고 따라서 새삼스러울 게 없는 일인데, 우리 주변이 말 그대로 거의 백 퍼센트 가까이 플라스틱으로 돼 있다는 것이다. 각종 음료의 페트병, 밀폐 용기, 수저, 포크, 칫솔, 치약 등등 모두이다. 심지어 입는 옷, 마시고 먹는 과정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이 우리 몸속으로 들어간다. 한 마디로 현대사회는 플라스틱이 지배하는 사회인 것이다. 물론 플라스틱 자체가 문제는 아닐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건 미세 플라스틱 물질이다. 두 가지이다. 하나는 프탈레이트이고 또 하나는 비스페놀이라는 것이다. 전자는 플라스틱을 유연하고 부드럽게 만들고 후자는 플라스틱을 단단하고 투명하게 하는 물질이다. 이것이 다 의학적으로 판명이 난 내분비계 교란 물질이다. 이 모든 것은 50여 가지에 이르는 오비소겐이라 부르는 합성화학물질이다. 인체에 영향을 미치고 대기에 영향을 미친다. 이 오비소겐의 독성 여부는 실험을 통해 대부분 입증되지도 않은 상태이다. 그럼에도 그냥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이의 위험성을 미국 대통령 후보까지 지냈던 존 케리 상원의원조차 지적하고 있을 정도이다.


영화는 샤나 스완의 불임 부부 실험 얘기를 기둥으로 다양한 환경, 건강, 사회문제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조였다 풀었다 한다. 다큐적 스토리 구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공동감독인 루이 시호요스는 <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로 2010년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탔던 인물이다. 또 한 명의 감독 조쉬 머피는 <인공생선, ArtiFishal>(2019)로 주목받았다. 연어 양식의 폐해를 다뤘던 작품이다. 두 사람 모두 자연과 인간의 교호 문제를 다루는데 능한 감독이다. 이번 작품으로 둘 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환경 다큐멘터리로 ‘국경을 넘었음을’ 보여준다. 


생각해 보면 그 둘은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은 분야이다. <플라스틱 디톡스>에서 두 감독은 지금까지 현대 인류가 DDT(살충제)의 위해성을 알리고 이를 없애는 데 성공했으며 석면의 살인적 위험성, 석유 속 납중독의 문제에 대해서도 알아채고 결국 이의 사용을 금지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한다. 따라서 플라스틱 역시 그 교훈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플라스틱 내 유독성 문제를 공론화하고 대중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알면 배우고 배워야 움직이며 움직여야만 고쳐진다. 죽은 친구 40명의 얘기를 목사에게 해 준 여성이 루이지애나 주거 환경 운동에 나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플라스틱 디톡스>는 플라스틱 디톡스가 개인 건강의 문제에서 사회운동의 차원으로 전환돼야 함을 얘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런 얘기가 솔깃하기 위해서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이 다큐는 위험한 얘기를 워낙 재미있게, 속도감 있게 해대서 오히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너무 재밌는 거 아닌가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깜짝 놀랄 만한 얘기도 있다. ‘플라스틱 폐기물 대책 위원회(Council for Solid Waste Solutions)’의 한 관계자 증언이다. 그는 침통하면서도 냉소적인 표정으로 현재 분리수거 되는 플라스틱의 재활용 비율이 9%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가 더 걸작이다. 재활용의 경제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공급량은 초과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공급이 과다한데 재활용까지 보탤 필요를 못 느끼고 있으며 재활용에 드는 비용이 더 많기 때문에 기업들은 이를 재활용하기보다는 폐기하는 쪽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폐기 처분의 장소가 한동안 중국이었고, 그걸 다룬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차이나>(2016)가 선댄스영화제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후 시진핑 중국 정부가 플라스틱 쓰레기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이 얘기도 이번 <플라스틱 디톡스>에서 일부 다뤄진다.


<플라스틱 디톡스>는 일상에서 플라스틱 디톡스를 실천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사회운동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얘기한다. 플라스틱 숟가락, 젓가락, 포크보다는 나무 재질의 것을 쓰거나 (한국처럼 쇠젓가락을 쓰거나!) 천연염료의 옷을 입고 플라스틱병보다는 텀블러 개인 용기를 가지고 다니는 개인 실천도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른바 녹색 화학 운동이라는 것이다. 화학물질을 만드는 화학자들, 기술자들부터 환경문제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과학자 존 워너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그는 ‘그린 화학 연구소’의 공동설립자이다. 존 워너 역시 자신의 연구실 실험에서 옮겨 온 어떤 물질로 2살짜리 아들을 잃은 경험이 있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장과 간을 잇는 담도가 막혀 일찍 사망했다. 거대한 깨달음은 개인의 아픈 경험들이 모여 이루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위대한 변화는 결국 희생의 결과이다.


“120년 전의 플라스틱은 대부분 식물 기반 소재였다. 그러다 1900년대 전반 석유 업계에서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폴리스티렌을 발견했다. 석유 분자를 분해하고 개질해 새로운 액체, 가스, 과립을 만들어 냈다. 땅에서 뽑아낸 석유는 여러 성분으로 분리되는데 요즘의 우리가 보는 석유 기반 플라스틱이 여기서 나온다. 저렴하고 가벼운 이 소재는 아주 흔해서 사람들은 그걸 이용해 온갖 것을 만들어 냈다. 사람들은 플라스틱에 열광했다.” 존 워너의 이 말은 모골을 송연하게 만든다. 지금 우리는 그 열광의 대가를 치르는 중이기 때문이다.


결국 석유가 문제이다. 화석연료를 줄여야 한다. 결국 태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문제이다. 천연 소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식물은 태양이 키운다. 만고의 진리이다. 태양의 수명은 50억 년이 남았다. 자, 어찌할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동진 영화평론가


[글쓴이 소개]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나왔다. 연합뉴스, 와이티엔(YTN)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영화 주간지 <필름2.0(FILM2.0)>과 <씨네 버스(cine bus)>, <엔키노(nKINO)> 등에서 영화 전문 기자 및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마켓위원장,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 동의대학교 영화과 초빙교수 역임, 현재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작은 영화가 좋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불온한 영화를 위하여'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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