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헤일메리] 이카루스의 욕망, 태양은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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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보일 감독의 2007년 작 <선샤인>
할리우드의 압도적인 기술력과 뛰어난 미장센을 통해 범접할 수 없는 태양의 경외감을 시각화한 걸작
태양, 우주, 자연, 인간의 관계에 대해 존재론적 질문
감독들에게는 저마다의 ‘저주받은 걸작’이 있다. 제임스 카메론에게는 <어비스>(1989)가 그렇다. 박찬욱에게는 <복수는 나의 것>(2002)이 그랬는데, 한때 쏟아졌던 저주는 나중에 풀려 이제는 걸작이 되었다. 영국 대니 보일 감독의 ‘저주받은 걸작’은 이번에 소개하는 2007년 영화 <선샤인>이다. 보통 저주받은 걸작이라고 부르는 작품들의 특징은 첫 개봉 때는 일단 흥행에 크게 실패한다는 것이고 그러다 서서히, 아주 천천히, 재평가되어 결국 감독의 대표작이 된다는 것이다. <선샤인>을 만들 당시 대니 보일은 영국에서 감각적인 연출로 매우 촉망받는 감독이었다. 우선 <트레인스포팅>(1996)으로 화려한 팝컬처 감각을 선보였고 <28일 후>(2002)를 만들며 좀비 영화의 새 장을 열었다. 할리우드가 바로 대니 보일을 낚아챘다. 5천만 달러를 그의 손에 쥐여 주었고 크리스 에반스, 로즈 번, 킬리언 머피, 양자경, 사나다 히로유키, 마크 스트롱, 베네딕트 웡 등 다국적 연합군, 스타 캐스팅을 일궈냈다.
<선샤인>은 20세기 폭스가 기획한 영화이다. 투자 제작 배급 극장 유통 모두가 그야말로 ‘짱짱한’ 모양새였다. 지금 와서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각본인데, 시나리오를 알렉스 가랜드가 썼다. 그는 AI 로봇 시대를 예견한 <엑스 마키나>(2015)와 미국이 내전 상황에 빠질 것이라는 신 남북전쟁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2024)를 연출한 인물이다. 무엇보다 그는 대니 보일과 좀비 영화 <28일 후>를 함께 작업한 다음 2025년부터 이른바 <28년 후> 3부작 시리즈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그러니까 과거의 <선샤인>도 망하려야 망할 수 없는 작품이었음에도 5천만 달러를 들여 (북미 박스오피스 기준 최종) 360만 달러를 벌어들인 망작(亡作) 중의 망작이 되고 말았다.
<선샤인>은 텍스트 분석이 어려운 영화가 아니다. 일단 태양이 꺼져간다는 이야기다. 과학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설정이다. 태양은 코어 온도가 1,500만 캘빈(K)이며 표면 온도는 5500-6000 캘빈이다. (이걸 알아낸 천문과학자들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학으로 온도 계산이 가능한 모양이다) 무엇보다 향후 50억 년 정도는 현재처럼 핵융합을 계속하며 활활 타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영화상으로는 태양이 죽어가고 있고 그걸 걱정한 지구의 과학자들, 핵물리학자들이 맨해튼 규모의 핵무기를 싣고 태양으로 접근해, 꺼져가는 태양을 핵미사일로 다시 점화시킨다는 얘기이다. SF영화는 상상력이다. 과학적 개연성을 너무 곧이곧대로 따지면 안 된다.
텍스트 분석이 쉽다는 건 이들이 타고 가는 우주선 이름이 ‘이카루스 2호’라는 대목에서 특히 그렇다. ‘이카루스’가 중요하고 ‘2호’라는 것이 중요하다. 이카루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날개 단 인간’의 이름이다.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건축의 신이라 불릴 만큼 장인이었는데 크레타의 왕 미노스에게 미움을 사 (미노타우로스라는 반신반인의 탄생과 관련이 있으며 제우스, 포세이돈의 저주와 연결돼 있다. 그리스 신화는 복잡하다)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미궁에 갇힌다. 다이달로스는 사랑하는 아들과 탈출하기 위해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단다. 이카루스는 아버지가 간곡하게 경고한, 태양에 너무 가깝게 다가가면 태양열에 날개가 녹는다, 는 얘기에도 불구하고 태양 가까이, 더 높이 날아보고 싶은 욕망을 어쩌지 못하고 다가가다가 날개가 녹아 추락해 죽고 만다. 자, 그러니 이 우주선 이름이 이카루스인 만큼 그 이야기의 운명은 이미 예고된 것이 아니겠는가.
1호가 아니라 2호라는 것도 1호에 무슨 사고가 났다는 얘기이겠다. 처음에는 우주 어딘가에서 고장을 일으켜 우주선이 실종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그 실종 미스터리에 모든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태양에 너무 가깝게 다가갔을까? 그게 아니라면 그러지 않았던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자발적 실종인가 아니면 외계 생물에 의한 납치일까. 영화 <선샤인>이 실패한 것은 두 개의 영화가 앞뒤로 붙어 있는, ‘시퀀스의 충돌’ 때문이다. 말하자면 영화의 앞뒤가 다르다는 얘기다. 딴 영화 같은 느낌이 든다. 앞은 SF영화인데 뒤는 슬래셔무비다. 이 두 장르를 하나로 붙인 영화는 <선샤인>이 처음이다. 대니 보일은 여기에 자기 장기 중 하나인 좀비 콘셉트를 비벼 넣었다. 꼭 좀비가 나온다는 얘기는 아니다. 앞뒤가 전혀 다른 영화라도 물론 성공할 수는 있다. 우리 영화 <파묘>가 그랬다. 앞은 호러 미스터리인데 뒤는 역사물이었다. 그러나 천만 관객을 모았다. 이종 장르의 결합이 꼭 대중적 실패의 주요 원인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냉철하게 말하면 <선샤인>은 두 개의 영화를 하나로 붙인 하이브리드 작품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철학적인 SF영화라 할 수 있고, 아마도 대니 보일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SF 철학 영화로 현재까지 아무도 따라갈 수 없는 영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를 능가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이카루스의 욕망 같은 것이었던 셈이다. 대니 보일 스스로가 이카루스가 됐다. 그래서 영화는 대중적으로 실패한 셈이 되었다. 감독의 욕망이 대중 관객의 욕망보다 크면 늘 사달이 난다. 2007년의 대중은 <선샤인>의 철학적 예술성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우주선 1호와 2호 안에서는 결국 기괴한 반목이 생긴다. 태양조차 우리가 통제하고 심지어 새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과학만능주의의 인간형, 그리고 그게 대세라면 따라가야 한다는 추수주의(追隨主義)가 존재한다. 실용주의에 현실주의적 태도를 보이기도 하다. 2호의 승무원들이 그렇다. 선장인 카네다(사나다 히로유키), 물리학자 카파(킬리언 머피), 엔지니어 메이스(크리스 에반스), 파일럿 캐시(로즈 번), 생물학자 코라존(양자경), 항법사 트레이(베네딕트 웡), 통신 담당 하비(트로이 개리티), 정신과 의사 써얼(클리프 커티스)은 태양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임무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원래 1호기 선장인 핀베커(마크 스트롱)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우주선 창문을 통해 태양의 불덩어리를 바라보며 조금씩 광기에 사로잡히기 시작한다. 그는 이카루스의 신화를 생각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충고만이 아니라 핀베커 스스로 이건 신의 뜻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 결국 극단주의자가 된다. 모든 사태는 핀베커 때문에 발생하지만, 그 근원은 신과 인간, 불가지론과 이지론, 종교와 이성, 인류의 궁극적 구원이 갖는 의미라는 철학적 문제에서 찾아진다.
<선샤인>은 재미있는 영화이다. 우주선의 실내 세트를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고 구현한 할리우드의 기술력이 최고조로 발휘된 작품이다. 자신이 녹아 죽는 것도 미처 인식하지 못한 채 현혹되는, 스크린 가득 쏟아지는 태양 빛의 장면은, 관객들에게도 아름다움은 곧 죽음과 같다는 착시를 불러일으킬 만큼 미장센이 뛰어난 장면이었다. 태양은 복속해야 할 주군 같은 존재이며, 함부로 그의 능력과 기능에 다가가려고 도전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인간의 과학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태양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특히나 우리 생전에는 결코 없음을 깨닫게 한다.
재미있는 영화였지만 왜 흥행에는 실패했는가. 영화 <선샤인>이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봉인된 규칙, 대중영화가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영웅(들)을 죽이지 않는다. ‘할리우드 히어로 네버 다이’이다. 그런데 <선샤인>에는 살아남는 인물이 없다. 다 죽는다. 다만 임무는 완수된다. 죽음과 비극으로 끝나는 결말에 대중들은 상처받았다. 상실감이 커졌다. 그것이야말로 이 나름의 걸작이 저주받은 이유가 된 셈이다.
태양광 에너지가 각광을 받는 요즘 이 영화 <선샤인>은 태양, 우주, 자연, 인간의 관계에 대해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태양 에너지를 어디까지,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일까. 자칫 저주에 걸리면 안 될 일이다. 그동안 태양을 향해 인류가 너무 까불었다. 태양과 지구는 상호존중을 통해 오존층이라는 중간 막을 만들었다. 오존층을 파괴한 것은 우리, 인간들이다. 태양은 화를 내지 않았다. 스스로가 더 겸손해지면 (환경과 더불어 살기를 애쓰면) 태양은 우리 이카루스의 날개를 녹이지 않을 것이다. <선샤인>에 대한 일람을 권하는 바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글쓴이 소개]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나왔다. 연합뉴스, 와이티엔(YTN)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영화 주간지 <필름2.0(FILM2.0)>과 <씨네 버스(cine bus)>, <엔키노(nKINO)> 등에서 영화 전문 기자 및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마켓위원장,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 동의대학교 영화과 초빙교수 역임, 현재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DMZ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작은 영화가 좋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불온한 영화를 위하여'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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