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헤일메리] 영화 ‘일본침몰’이 예언했던 것, 얘기하려고 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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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위험하다. 일본 여행을 자제하라고 한다. 일부 유튜브 채널에서는 일본에 곧 대재앙이 닥칠 거라며 호들갑을 떤다. 일본에는 난카이라는 이름의 긴 해곡이 있다. 혼슈 남쪽 시즈오카현 앞바다에서 규슈 동부 해역까지 이어지는 해저 계곡이다. 시즈오카현 주변에 도쿄, 나고야, 오사카가 다 퍼져 있다. 규슈에는 미야자키, 가고시마 등이 있다. 난카이 해곡에서는 100년에서 150년 주기로 규모 8~9도의 대지진이 일어난다. 일본 지진조사위원회는 지난해 향후 30년 이내에 난카이 대지진이 발생할 확률을 80% 이상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2024년 이시카와현 노토 지방에서 규모 7.6의 지진이 발생한 것을 비롯해 올해 2026년 7월 28일에는 규슈 구마모토현에서 규모 7.1의 지진이 일어났다. 불길한 예언이 성큼성큼 실현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번 8월에는 치바현을 비롯해 일본 서부에 물폭탄이 쏟아졌다. 시간당 115mm의 기록적인 폭우였다. 일본이 멸망할 거라는 호들갑 유튜버들이 줄을 이었다. 일본은 침몰할 것인가.
2006년에 나온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 <일본침몰>은 기묘하게도 지금의 일본을 예견하고 있는 듯한 오싹한 느낌을 준다. 그건 얼마 전 네팔 대홍수를 EBS TV 다큐멘터리 <하나뿐인 지구 – 히말라야 대재앙, 빙하 쓰나미>가 예상했던 일과 같은 맥락이다. 2014년 이 다큐가 TV 전파를 탈 때 ‘빙하 홍수’가 실제로 일어날 거라 여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일본침몰>도 한국에서는 그냥 흥밋거리의 재난 영화로 치부됐었다. 비평 면에서나 흥행 쪽에서나 특히 한국에서는 ‘침몰’ 수준의 대접을 받았다. 개봉 당시 77만 명 정도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한국에서는 블록버스터라면 관객이 기본 3~4백만은 들던 때였다. 물론 일본에서는 대 히트를 기록했다.
어느 날 일본 스루가만(혼슈 시즈오카현에 있는 일본에서 가장 깊은 만)에서 진도 10도짜리 지진이 발생한다. 문제는 지진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곧이어 도쿄와 규슈 지역에서도 지진이 이어진다. 영화 속에서 미국의 지질학회가 한 연구 결과를 발표해 충격을 준다. 일본열도가 향후 40년 안에 침몰할 것이라는 학설이다. 그러나 일본 내 지질학 박사인 타도코로(토요카와 에츠시, <러브레터>에서 나카야마 미호 상대역 배우로 이 영화가 일본에서 대 히트를 기록한 데에는 <러브레터>로 인지도를 높인 남자 배우 캐스팅 덕이 컸다)는 그게 아니라, 일본열도의 운명이 338.54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놓는다. 내각이 발칵 뒤집힌다. 일본 사회는 곧 아비규환의 혼란에 빠진다. 그 와중에 일본의 총리 대행 노자키 코스케(쿠니무라 준)는 일본열도의 수명이 5년이나 남았다며 국민 모두를 해외로 충분히 이주시킬 수 있다고 거짓으로 발표한다. 그는 국민 대다수를 희생시키더라도 일부 지도자나 엘리트층만을 선별해 해외로 도피시키려는 음모를 꾸민다. 그것이 일본이라는 국가를 생존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그는 믿는다.
타도코로 박사의 전처이자 코스케 대행 이전에 화산 폭발로 화산탄에 맞아 사망한 총리로부터 방재 담당 장관직을 지명받은 타카모리 사오리(다이치 마오)는 전남편으로부터 ‘신박한’ 방법을 제안받는다. 일본열도와 해저의 지진대 판을 핵폭탄급 폭발(실험용 N2 폭약)로 분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말이 쉽지 보통 일이 아니다. 해저 잠수정 조종사 오노테라 토시오(쿠사나기 츠요시, 한국명 초난강)가 자폭 작전에 나선다. 지구 심부 시추선 ‘치큐’호를 타고 섭입대 부분에 기폭장치를 연결하기 위해서이다. 지구에는 무거운 해양판이 있고 가벼운 대륙판이 있는데 이 두 판이 부딪힐 때 무거운 쪽이 가벼운 쪽을 끌고 들어가면서 지반이 침하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그 경계가 바로 섭입대이다. 일본열도는 가벼운 대륙판이고 그 밑의 해저가 무거운 태평양판이다. <일본침몰>의 ‘침몰’은 이 현상 때문에 벌어지며 말려 들어갔던 대륙판이 탄성에 의해 위로 튕겨 올라오면서 거대한 지진과 쓰나미를 일으키는 것이다.
어쨌든 이 섭입대를 끊어 내자는 것이 타도코로 박사의 아이디어이고 그것을 수행하는 영웅이 초난강이다. 쿠사나기 츠요시의 희생 장면은 마치 <아마겟돈>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혹성의 심장부로 핵탄두를 탑재한 우주선을 몰고 뛰어드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일본침몰>이 개봉 당시 일정 부분 비아냥의 반응을 얻은 데에는 그 같은 결말의 유사함도 한몫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이 영화를 생각하면 기이한 판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본침몰>과 같은 재난 영화는 미래를 직접 예언한다기보다는 우리가 보지 못했거나 애써 외면해 왔던 것을 새삼 직시하게 만든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열도는 침몰할 수 없지만 (그것도 1년이라는 단기간 내에) 대지진과 화산의 연속적인 폭발 속에서 사회의 시스템은 급속하게 ‘침몰’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우리가 막아야 할 것은 앞이나 뒤 하나만이 아니라 둘 다일 수 있다. 둘은 손바닥과 손등의 관계이다. 자연 재앙은 사회를 무너뜨리고 사회 시스템의 붕괴는 자연재해를 불러온다.
영화에서 북쪽 홋카이도부터 중간지대인 혼슈의 후지산을 거쳐 남쪽인 규슈에 이르기까지 일본을 지탱하는 거대한 화산들이 도미노처럼 차례로 터지는 모습은 ‘차라리’ 장관이었다. 특히 규슈의 아소산(구마모토현)이 최대 분화하는 장면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였는데 이런 ‘영화적 노력(CG와 특수효과, 미니어처)’이 한국 관객들에게 그다지 가슴에 와닿지 않았던 것은 기술적 완성도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그 같은 재난 상황이 자연 재난 안전지대에 사는 우리로서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구마모토현 지진 사태를 목격하면서 다시 한번 이런 영화가 이미 여러 차례 경고를 보내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일본은 실제로 침몰하고 붕괴하고 있는가. 그보다 영화 <일본침몰>은 환경 웹진 ‘솔라타임즈’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영화처럼 한 나라가 급작스럽게 붕괴하는 일은 없다. 그런 재앙은 실로 영화적인 얘기일 뿐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기후 위기로 인한 재앙이 더욱 현실화할 수 있다. 다만 <일본침몰>은 ‘위기감의 자각’에 큰 자극을 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지구는 환경재해로 인해 심각한 재앙이 터질 가능성이 크다. 탄소배출을 줄이고, 온난화의 속도를 낮추고, 기후를 정상화하려는 노력 등등 인간이 해낼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수행해야 한다. 각자가 방재 담당 장관 같은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땅 밑의 변화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천재지변의 재앙이 벌어졌을 때를 상정하면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 수 있는 노력을 게을리할 수도 없는 일이다. 따라서 내 주변의 환경부터 지킬 일이다. 기후 변화의 속도를 늦출 일이다. 물과 바람, 태양광을 써야 할 일이다. 태양의 수명은 50억 년 남았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글쓴이 소개]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나왔다. 연합뉴스, 와이티엔(YTN)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영화 주간지 <필름2.0(FILM2.0)>과 <씨네 버스(cine bus)>, <엔키노(nKINO)> 등에서 영화 전문 기자 및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마켓위원장,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 동의대학교 영화과 초빙교수 역임, 현재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작은 영화가 좋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불온한 영화를 위하여'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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