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3부] 세계는 ‘규제가 아니라 유인’으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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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태양광 보급률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2025년 기준 누적 설치용량은 30GW를 넘었고, 전국 18만여 곳의 발전소가 전력을 생산 중이다. 겉으로는‘그린 붐’이지만 산업의 심장은 식어가고 있다. 공장은 멈췄고 기술 인력은 떠났으며 국산 부품의 비중은 10%도 남지 않았다.
태양광이 성장할수록 산업은 쇠퇴하고 있다. 보급 통계는 늘었지만 시장의 이익은 중국으로 향한다. 한국의 태양광 산업은 설치 산업으로만 남았고 기술·제조·공급망은 무너졌다. 정책은 환경을 말했다가 곧 정치로 변했다.
왜 이런 모순이 생겼을까. 정부의 보급 중심 정책, 중국의 가격 공세, 그리고 정책 신뢰의 붕괴가 한 축을 이뤘다. “RE100”과 “탄소중립”이 세계의 공통어가 된 지금 한국은 기술 강국이면서도 산업의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다.
본지는 태양광 산업의 구조적 위기를 진단하고 정책 전환 이후 산업 생태계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를 4회에 걸쳐 집중 분석한다(편집자 주).
세계 주요국이 태양광 산업을 ‘제조 주권의 문제’로 재정의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 인도 등은 태양광을 단순한 에너지 보급사업이 아니라 산업 기반을 되살리는 전략 산업으로 보고 규제가 아닌 유인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보고서에서 “전 세계 태양광 공급망의 80% 이상이 중국에 집중돼 있다”며 “에너지 안보를 위해 생산 거점 다변화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그 흐름의 중심에 있다. 2022년 시행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사실상 ‘태양광 산업 육성법’으로 불린다. 이 법은 모듈, 셀, 웨이퍼 등 주요 부품을 미국 내에서 생산할 경우 최대 45%의 세액공제를 제공하고, ‘국내산 보너스(Domestic Content Bonus)’ 조항을 통해 미국산 부품 사용 비율이 높을수록 추가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이 제도 시행 이후 조지아주에서는 한화솔루션이 3.2GW 규모의 모듈 공장을 착공했고, 오하이오주에서는 퍼스트솔라가 25억 달러를 투입해 신규 설비를 확충했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신규 태양광 공장 40여 곳이 착공됐으며, 민간 투자액은 300억 달러(약 40조 원)를 넘어섰다. 세제 유인을 중심으로 민간 자본이 제조 생태계로 유입된 대표 사례다.
유럽연합은 넷제로 산업법(Net-Zero Industry Act)을 통해 2030년까지 역내 생산 비율 40% 달성을 목표로 세웠다. 각국 정부는 인허가 기간 단축, 보조금 지원, 공공조달 가점 부여를 결합해 제조기반 회복을 유도하고 있다. 프랑스는 태양광 입찰 시 ‘유럽산 점수’를 평가 항목에 반영했고 독일은 국가 프로젝트에서 최소 30% 이상의 로컬 부품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유럽의 산업정책은 단순한 보조금 지급을 넘어 공공조달과 환경기준, 기술개발 지원을 묶은 시장친화형 구조로 발전하고 있다.
인도도 빠른 속도로 추격 중이다. 2023년부터 중국산 셀·모듈에 최대 30%의 반덤핑관세를 부과하고, 공공 태양광 프로젝트에는 국산 제품 사용을 의무화했다. 생산연계보조금(PLI) 제도를 통해 정부가 직접 설비 투자액 일부를 지원하며 이미 50여 개의 신규 공장이 착공 단계에 있다. 인도 정부는 이를 통해 10만 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하고, 48GW 규모의 국내 생산능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보호무역이 아니라 산업전략으로 접근한 결과, 인도는 이제 아시아 내 태양광 생산기지로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의 공통점을 “규제보다 유인이 시장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찾는다. 업계 한 전문가는 “미국은 세금 감면으로, 유럽은 조달정책으로, 인도는 관세로 각각 다른 방식의 유인 구조를 설계했다”며 “한국은 아직 이에 상응하는 체계적 전환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정책은 여전히 설치량 중심의 프레임에 머물러 있다. 정부가 보급 통계를 강조하는 동안 국내 제조 생태계는 빠르게 위축됐다. 한 국내 셀 제조사의 가동률은 2020년 90%에서 2024년 55% 수준으로 떨어졌고 주요 원자재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미국과 인도로 생산 거점을 옮기는 이유도 인센티브 격차 때문이다. 한 모듈 기업 대표는 “한국에서는 세액 공제가 3%에 불과한 반면, 미국에서는 30% 이상 지원받는다”며 “동일한 기술로도 경쟁이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세계는 이미 보급의 시대를 지나 산업의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태양광은 이제 재생 에너지를 넘어 산업 안보이자 기술 주권의 영역으로 확장됐다. 한국이 여전히 규제 중심의 행정 틀 안에 머문다면 설치 통계는 늘어도 산업 경쟁력은 오히려 후퇴할 수 있다. 정책의 중심축을 ‘규제 완화’에서 ‘유인 강화’로 돌려야만 국산 기술과 산업 생태계의 생존 공간이 확보될 것이다. 세계는 규제가 아니라 유인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국의 선택도 머지않아 그 갈림길에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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