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루의 시선] 병오년은 아직 오지 않았다 – 관행이 기준을 대체할 때 생기는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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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금 다른 얘기로 칼럼을 시작하려고 한다. 60간지에 대한 얘기다. 금년도 역시 언론과 공공기관 신년 문안에서 ‘병오년이 밝았다’는 60간지 표현이 반복된다. 이 표현은 역법 기준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간지에서 해가 바뀌는 시점은 양력 1월 1일이나 음력 설이 아니라 입춘이다. 이는 동아시아 역법 체계에서 일관되게 적용돼 온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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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년 새해는 아직 오지 않았다(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입니다).
입춘을 기준으로 한 간지 전환은 관련 문헌과 해설에서 지속적으로 설명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기준은 공공 일정이나 공식 문안 작성 과정에서 반영되지 않는다. 1월 1일 이후 사용되는 간지 표기는 실제 계산 결과가 아니라 연도 표기를 보조하는 관행적 요소로 사용된다.
한국 사회에서 양력 1월 1일은 행정 운영의 기준점이다. 국가 회계 연도, 교육 일정, 기업 경영 계획과 계약 체결이 모두 이 날짜를 기준으로 설정된다. 언론의 신년 특집과 공공기관의 인사 문안 역시 같은 일정에 맞춰 생산된다. 반면 간지 전환의 기준인 입춘은 이러한 제도 설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간지는 실제 기준이 아니라 형식적 표기로 기능하고 있다.
새해 인식 역시 이중 구조를 가진다. 행정과 제도는 1월 1일을 기준으로 운영되며 사회적 의례와 대규모 이동은 음력 설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로 인해 연초 일정은 분산된다. 그러나 이 구조에 대해 제도적으로 점검하거나 조정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관행은 설과 오행 체계 전반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은 중국과 동일한 음력 설을 공휴일로 유지하고 있으며 오방색이 결합된 10간의 색 체계도 별도 검토 없이 차용해 왔다. 이미 행정과 경제, 교육과 국제 교류에서는 서양력이 기준으로 정착됐다. 설은 현재 문화 행사와 사회 관습의 성격이 강하다. 그럼에도 공휴일 유지의 근거와 기준에 대한 정책적 검토 자료는 공개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오방색이 결합된 10간의 색 체계 역시 제도적 근거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 체계는 본래 특정 시대의 질서와 권위 구조를 시각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사용됐다. 현재는 제도나 규범이 아니라 행사 장식과 디자인 요소, 홍보 이미지 등에 제한적으로 활용된다. 의미 체계는 유지되지 않은 채 형식만 관행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국가별 선택을 보면 차이는 분명하다. 중국은 음력 설을 국가 정체성의 일부로 관리하며 Chinese New Year라는 명명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근대 전환 과정에서 중국적 상징 체계를 제도적으로 정리하고 사용 범위를 축소했다. 한국은 두 방식 중 어느 쪽도 명확히 선택하지 않았다. 제도적으로 정리하지 않은 채 관행을 유지해 온 결과가 현재의 사용 방식이다.
이 문제의 구조는 에너지 정책 논의에서도 반복된다. 태양광 산업을 둘러싼 비판 역시 상당 부분 관행적 인식에 기반해 제기된다. 출력 변동성, 계통 불안정, 경제성 부족과 같은 주장은 오랫동안 반복돼 왔지만 실제 운영 데이터와 제도 개선 효과를 기준으로 한 점검은 충분히 축적됐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원전 중심의 에너지 담론에서는 태양광을 비현실적 대안으로 규정하는 주장이 관성처럼 이어진다. 일부 원전 관련 이해관계자들은 재생에너지가 전력 체계를 위협한다는 표현을 반복하지만 이러한 주장 역시 현재의 계통 운영 경험이나 국제적 전환 흐름을 체계적으로 반영한 분석이라기보다 기존 체계 유지를 전제로 한 평가에 가깝다.
태양광을 둘러싼 논의에서 문제는 성과 자체보다 평가 방식이다. 태양광 정책은 설치 용량과 발전량, 계통 보완 비용, 시장 제도 변화라는 구체적 지표로 점검돼야 한다. 그러나 실제 논의에서는 “원래 안 된다”, “비효율적이다”라는 전제가 먼저 제시되고 이후의 데이터는 부차적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기준을 검토하지 않은 채 관행을 유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병오년을 1월 1일에 말해 온 이유를 제도적으로 따져 묻지 않았듯 태양광에 대한 부정적 인식 역시 오랫동안 점검 없이 반복돼 왔다. 문제는 찬반이 아니라 검토 절차의 부재다. 에너지 전환은 유지하거나 배제할 대상이 아니라 관리하고 조정하며 검증해야 할 정책 영역이다.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서 기준 점검이 생략되면 관행이 남는다. 에너지 정책도 마찬가지다.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논쟁은 반복되고 구조는 고정된다. 태양광 산업을 둘러싼 논의가 관성의 영역을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호가 아니라 기존 전제에 대한 점검이다. 이것이 이 칼럼이 시간 이야기로 시작해 에너지 정책으로 끝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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