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루의 시선] 고정가격계약 ‘기간 유연화’… 태양광 사업자엔 기회, 풍력엔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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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고정가격계약 기간 유연화 방침이 발표되면서 태양광 및 풍력 발전사업자들의 전략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특히 태양광 사업자들에게는 새로운 수익 전략의 기회가 열리는 반면, 대규모 자금 조달이 필요한 풍력사업자들에게는 리스크 관리가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한국에너지공단이 예고한 ‘공급인증서 발급 및 거래시장 운영에 관한 규칙’ 개정안에는 고정가격계약 기간을 기존 ‘20년 고정’에서 단축 또는 연장할 수 있도록 조항을 유연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향후 10년, 15년, 25년 등 다양한 계약 기간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이는 정책 유연성 확보뿐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소규모 중심의 태양광 사업자들에게 이번 조치는 전략적 유연성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특히 현물시장 가격이 급등할 경우 고정가격계약을 중도 종료하고 현물시장으로 이동해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사업자들에게 선택지가 생긴 것이다.
고정가격계약은 수익 안정성을 보장하지만, 시장 가격이 상승할 경우 오히려 기회를 놓치는 구조였다. 이에 따라 태양광 업계에서는 그간 “20년은 너무 길다”는 불만이 적지 않았다. 이제 일정 기간 안정성을 확보한 후 시장 상황을 보고 전략을 수정할 수 있어, 현물시장에 대한 민첩한 대응이 가능해진다.
이로 인해 향후 일부 태양광 사업자들은 10년 또는 15년 계약을 체결하고, 이후 시장 상황에 따라 현물시장 전환을 고려하는 혼합 전략(hybrid strategy)을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조 단위 투자가 이루어지는 풍력발전 사업자들에게는 계약기간 유연화가 불확실성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해상풍력처럼 사업성이 크고 회수 기간이 긴 프로젝트의 경우, 장기 고정수익 보장이 있어야 자금 조달이 용이하다.
금융기관은 고정가격계약을 담보로 자금을 빌려주는 PF(Project Financing) 구조를 선호한다. 계약기간이 짧아지면 예측 가능 수익이 줄어들고, 금융비용 상승과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한 업계 관계자는 “풍력은 헷징(hedging)이 중요한 사업이다. 계약 기간이 줄어들면 수익 예측이 어렵고, 자금 유치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규정 개정 시 “연장 가능성”도 명시함으로써 풍력 업계의 불안 심리를 어느 정도 달래려는 포석을 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계약기간 유연화는 단순한 행정 조치 이상으로, 재생에너지 시장 구조의 변화 신호탄으로 읽힌다. 정부는 이미 RPS(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 폐지를 검토 중이며, 그 대안으로 경쟁 입찰 방식의 재생에너지 경매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때 계약기간이 유연해야 다양한 투자자들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 예컨대, 단기 수익에 초점을 둔 투자자는 10년 계약을 선호하고, 장기 안정성을 추구하는 기관투자자는 25년 계약을 택할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도 계약기간을 유연하게 운영함으로써 재생에너지 공급자 풀을 넓히고, 제도 전환기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계약기간 유연화는 태양광·풍력 사업자 모두에게 일종의 전환점이다. 태양광은 수익 다변화의 기회, 풍력은 리스크 관리의 필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각 사업자는 자신의 자금 구조, 사업 모델, 시장 전망에 맞춘 전략 수립이 필수가 될 것이다.
향후 시행령 세부 내용과 실제 계약 사례에 따라 시장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발전사업자들은 정부의 정책 시그널을 예의주시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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