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이 계획하고 한전이 운영하는 계통 구조… 재생에너지에 불리한 게임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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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솔루션이 발표한 ‘성공적인 에너지 전환의 핵심, 계통 거버넌스 개선 방향’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로막는 진짜 문제는 발전량 증가나 전력망 물리적 용량 부족이 아니라 ‘한전 중심의 전력망 계획·운영 구조’인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는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이 직면한 가장 큰 제약을 접속 지연, 변전소 지정 문제, 계통 포화 등의 기술 문제가 아니라, 이를 관리하는 거버넌스의 비대칭성으로 규정했다.
현재 한국의 전력망 계획·운영 구조는 한전이 장기 송전망 계획을 수립하고, 전력접속 규칙을 만들고, 계통 운영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다. 문제는 한전이 여전히 석탄·원자력 중심 발전자산과 연결된 지주사라는 점이며, 이 때문에 변동성이 높은 태양광·풍력의 확대를 유인할 구조적 이익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반면 영국과 미국 등 재생에너지 선진국은 계통운영기관(ISO/RTO)과 규제기관(Ofgem, FERC)을 분리하여 망 운영과 규제 권한을 독립적으로 배치해왔다.
보고서는 한국형 계통 구조 문제의 본질을, 한전 중심의 계획·운영 집중으로 인한 재생에너지 의사결정 지연과 전력거래소·전기위원회의 독립성 부족으로 인한 견제력 부재, 그리고 ‘선착순 접속’ 방식으로 인한 계통 포화 및 자원 배분 왜곡이라는 세 가지로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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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력망 거버넌스는 계획과 실행이 단일 축으로 묶여 있는 KEPCO(한전) 중심 구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장기 송전망 구축과 전력계통 안정성 측면에서 압축적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한다. 반면 영국과 미국은 계획·규제·이행의 역할이 분산되어 있어 구조적으로 복수 주체가 관여하는 형태를 보인다.
특히 태양광 발전사업자 입장에서는, 발전소를 건설해도 계통 접속 대기 기간이 수년 이상 발생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특정 이해관계자 중심의 접속관리 절차가 지속되어온 구조적 결과라는 것이 기후솔루션의 분석이다.
보고서는 개선 방향으로, 장기 송전망 계획과 접속 관리 권한을 한전에서 전력거래소로 이전하고, 규제기관을 독립형 중앙행정기관으로 설립해 요금·접속·규칙 변경을 심사·승인하며, 접속 방식을 ‘선착순’에서 ‘준비된 순서(First Ready & Needed)’ 방식으로 전환하는 구조 재편을 제안한다.
이는 태양광·풍력 등 분산형 전원의 특성에 적합한 계통 운영 철학으로서, 사업 진행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가 먼저 계통에 접속할 수 있게 하는 장치다. 허수 물량을 정리하고, 민간 투자자들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기후솔루션 김건영 변호사는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히 송전선로를 더 까는 것이 아니라, 누가 그 송전선을 어떤 목표로 계획하고 관리하느냐의 문제”라며 “한국의 전력망 체계를 공정하고 중립적인 구조로 바꾸어야 재생에너지의 전력시장 참여가 정상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력망 거버넌스 개편은 단순한 제도 변경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시대의 ‘시장설계 리셋’ 작업이다. 태양광 산업의 확장은 전력망 용량의 문제가 아니라 계통을 다루는 규칙의 문제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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