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루의 시선] 머뭇거림의 시간은 끝났다, 국민은 기후 위기 대응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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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여름의 땡볕 아래에서, 갑작스런 폭우에 무너진 골목길에서, 연일 이어지는 미세 먼지의 흐린 하늘에서. 기후위기는 더 이상 추상적 경고가 아니었다.
설문은 그것을 숫자로 고정했다. 기후솔루션 의뢰로 한국리서치가 전국 주요 지역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1.7%가 국제 사회가 요구하는 2035년 60% 감축에 동의했다. ‘보통’이라는 응답까지 포함하면 열에 아홉은 반대하지 않았다. 국민의 의식은 이미 정치와 산업계를 앞질러 달리고 있었다.
정부가 내놓은 4개의 안은, 산업계의 숨통을 고려한 40%대 감축에서부터 국제 권고 수준인 61%, 시민단체가 제안한 67%까지였다. 그 가운데 61%는 국제사회가 권하는 최소치이자, 서울대와 카이스트, 메릴랜드 대학 등이 수치로 입증한 ‘실현 가능한 과학’이었다.
그러나 논의는 늘 저울 위에 올려놓은 듯 머뭇거린다. 정치적 부담과 산업적 이해가 발목을 잡고 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주저한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여론은 한쪽으로 확실히 기운 무게추다. 국민은 더 강한 목표를 선택하라 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재명 정부의 기후 정책 지지율이다. 열에 일곱이 지지한다고 했으나 실제 정부 의지에 대한 평가는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는 단순한 모순이 아니다. 국민은 방향을 지지하지만 속도와 실행력에 목말라 있다. 그 간극이 ‘45%’라는 수치로 드러난 것이다. 정부가 비전은 내세웠으나 그것이 현실의 정책과 예산, 산업 구조 개편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국민적 불만이 반영된 수치이기도 하다. 정치가 더 과감해지길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미 수치로 드러난 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이다. 응답자의 89.2%가 기후변화를 이미 몸으로 느낀다고 답했다. 폭염, 홍수, 산불—그 목록은 이제 재난 보고서가 아니라 일상의 경험이다. 건강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80%를 넘었다. 추상은 생활로 바뀌었고, 생활은 정치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기후 문제를 미루는 것은 단순히 환경 정책의 지연이 아니라 국민 삶 전체를 방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번 조사는 그 점을 다시 확인시킨다. 기후 위기를 방치하면 결국 더 큰 비용과 더 깊은 피해가 돌아온다는 사실을 국민은 이미 몸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에 다수는 60% 이상의 감축 목표를 요구한다. 기후솔루션은 이번 결과를 두고 한국 정부가 61% 이상의 목표를 확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단순한 캠페인의 구호가 아니라 경제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전제이자 국제 사회와의 신뢰를 지탱하는 조건이다.
이제 남은 것은 선택이다. 2035년 60% 이상 감축이라는 수치가 ‘이상’인지 ‘현실’인지는 이미 학계와 시민사회가 답을 내놓았다. 국제 사회도 한국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 지금 정부가 머뭇거릴수록 비용은 커지고 피해는 깊어진다. 그러나 이번 조사가 보여주듯 국민이 이미 먼저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희망이다. 여론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정치와 산업이 따라야 할 나침반이다.
국민이 앞서 나아가고 있다면 이제 정치와 산업이 그 뒤를 따를 차례다. 기후 위기는 한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건강과 삶을 묶는 공통의 언어다. 따라서 2035년 60% 이상 감축 목표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정부가 국민 여론을 근거로 국제 사회와 보조를 맞출 때 그 길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연대의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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