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루의 시선] 버려지는 전기, 대규모 산업 단지 수도권 고집 인식 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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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의 들녘은 여전히 태양을 품는다. 오후 1시, 모듈 위로 바람이 지나가고 인버터는 묵묵히 출력 수치를 올린다. 그러나 이 전기는 어디에도 가지 못한다. 2.4GW. 전남·광주 지역에서만 계통에 연결되지 못하고 대기 중인 발전 용량이다. 전북까지 합치면 4GW를 넘긴다. 원자력발전소 네 기가 하릴없이 가동만 하고 있는 셈이다.
전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흘려보낼 길이 없다. 왜냐고? 망이 없다. 전력망, 송전선, 접속점, 어디 하나 제때 확충된 것이 없다. 발전사업자들은 대기표만 붙잡고 수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송전선은 수도권으로만 향해 있고, 변전소는 이미 포화다. '수요가 없어서 그렇다'고? 그건 핑계다. 수요는 있고 수요는 움직일 수 있다.
진짜 문제는 사람이 안 간다는 것보다 가지 않으려 한다는 데 있다.
용인, 평택, 수원. 엔지니어들이 희망 근무지로 꼽는 ‘남방 한계선’이다. 그 아래로는 경력을 쌓기 위한 임시 주둔지일 뿐 미래를 건 자리로 여기지 않는다. 전남에서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는 말에 의심부터 하고 전북에서 RE100 클러스터를 만든다는 계획에 반신반의한다. 이는 지방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에만 머무르려는 전체 산업 생태계의 사고방식이 병들어 있는 것이다.
서울이 아니라도 된다. 수도권이 아니라도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빛은 남쪽에서 생산되고 있다. 전력의 중심이 남하했는데 왜 산업은 그대로인가?
왜 RE100 공장을 경기 남부에 짓고 왜 인재 양성도 서울 테두리에서만 이뤄지는가?
수도권의 땅값, 인건비, 계통 포화, 미세먼지까지 감안하면 이제는 대규모 산업이 지방으로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과감해야 한다.
RE100을 진짜로 할 생각이라면 전북 김제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고 전남 해남에 반도체 전력 테스트베드를 만들어야 한다.
해외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확보를 위해 사막과 해안에 공장을 짓듯이 우리도 이제는 ‘광역 경제권’ 개념을 버리고, 전력망을 따라 산업을 옮겨야 한다.
정부는 8.9GW의 대기 전력을 줄이기 위한 망 확충을 이야기하지만 그보다 선행돼야 할 건
“사람이 움직이게 만드는 비전”이다.
에너지 기반 스타트업이 전남 나주에 본사를 두는 일이 더 이상 이상해 보이지 않아야 한다.
지역 거점 국립대와 함께 R&D를 묶고 기업이 수도권이 아닌 남해안에 본사를 이전할 때 세금과 금융을 통째로 우대해줘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더 늦기 전에 말해야 한다.
“모든 전력은 수도권으로 가야 한다”는 말은, 틀렸다.
이제는 "수도권이 전력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버려지는 전기보다 더 안타까운 건,
지금 이 순간에도 바뀌지 않는 잘못된 중심성이다.
남부 지방은 태양이 뜨는 곳이다.
이제는 거기에 산업도 뜨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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