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2차 전기본 앞두고 원전 공론화…“전력수요 전망부터 검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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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간 시민참여단 숙의 거쳐 12월 권고안 도출
신규 원전 기수·용량 결정은 공론화 대상서 빠질 가능성
메가프로젝트 전력수요 전제로 한 논의에 공정성 논란
정부가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을 앞두고 원자력발전의 역할을 결정하기 위한 대국민 공론화에 들어간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기차 보급 확대 등으로 전력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원전이 향후 전력공급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맡아야 할지를 국민에게 묻겠다는 취지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2일 국무회의에서 ‘원전 공론화 추진계획’을 보고하고 앞으로 약 3개월간 공론화 절차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당초 10월로 예정됐던 12차 전기본 정부안 발표도 공론화 결과를 반영하기 위해 12월로 미뤄졌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전력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안정적인 전력공급과 탄소중립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원전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에 대한 국민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번 공론화를 단순한 원전 찬반 여론조사가 아닌 숙의형 방식으로 진행한다. 대표성을 고려해 시민참여단을 구성하고 원전과 전력수급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 뒤 학습과 토론을 거쳐 의견을 수렴한다. 공개토론회와 온라인 의견수렴도 병행한다.
공론화를 이끌 ‘원전 공론화위원회’는 위원장 1명과 위원 10명 등 11명 이내로 구성된다. 인문사회·과학기술·조사통계·갈등관리·에너지 등 분야별 기관과 단체의 추천을 받아 원전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인사를 위촉할 계획이다.
원전 분야 전문가들은 별도의 전문위원회에 참여한다. 전문위원회는 원전과 전력수급, 전력계통 등에 관한 정보를 검토하고 시민참여단의 숙의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공론화위원회는 약 3개월간 논의를 거쳐 오는 12월 권고안을 기후부에 전달한다. 기후부는 공론화 결과에 전력수급과 전력계통 등에 대한 전문적인 검토를 더해 12차 전기본을 수립할 예정이다.
지난 11차 전기본 수립 당시 신규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를 반영하는 과정에서 전화·ARS 방식의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을 두고 ‘졸속 공론화’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부가 이번에 시민참여단의 학습과 토론을 거치는 숙의형 방식을 도입한 것도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시민참여단이 실제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김 장관은 “원전을 지을 거냐 말 거냐, 혹은 몇 개를 지을 거냐, 이렇게까지 결정하는 것은 공론화위의 영역에 해당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신규 원전의 구체적인 기수와 설비용량은 전력수급과 계통 여건 등을 고려해 정부와 전기본 위원회가 판단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이미 추진 절차에 들어간 원전도 이번 공론화의 직접적인 대상에서 제외된다. 제11차 전기본에 반영된 신규 대형 원전 2기와 SMR 1기를 비롯해 이미 부지가 선정된 신규 원전, 설계수명 연장이 추진되는 기존 원전 등은 별도의 법적·행정적 절차에 따라 추진된다.
결국 이번 공론화는 기존 원전 사업을 재검토하거나 신규 원전의 구체적인 숫자를 결정하는 절차보다는 12차 전기본에서 원전이 담당할 전반적인 역할에 대한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성격이 강하다.
공론화의 또 다른 쟁점은 논의의 출발점이 되는 미래 전력수요 전망이다. 정부는 반도체 산업단지와 AI 데이터센터 등 이른바 ‘3대 메가프로젝트’, 전기차 보급과 산업 전기화 등에 따라 대규모 추가 전력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12차 전기본에서는 기존 전망보다 높은 전력수요를 전제로 발전설비와 송전망 확충 방안이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데이터센터의 실제 건설 규모와 반도체 산업단지의 가동 시점, 기업의 투자계획은 향후 사업 추진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신규 산업수요가 언제, 어디에서 현실화되는지에 따라 필요한 발전설비뿐 아니라 송전망과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계통설비 규모도 크게 달라진다.
시민사회가 원전 공론화에 앞서 전력수요 전망 자체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특히 정부가 메가프로젝트 등으로 대규모 추가 전력이 필요하다는 전망을 사실상 전제로 놓은 뒤 이를 충당하기 위한 원전의 역할을 묻는다면 공론화의 선택 범위가 처음부터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력수요 증가라는 전제 자체에 이견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발전원 구성만 공론에 부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시민참여단에 어떤 정보가 제공되는지도 공론화의 신뢰성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원전의 경제성과 안전성뿐 아니라 사용후핵연료 처리 비용과 건설기간, 재생에너지 확대에 필요한 송전망과 ESS, LNG 의존도와 탄소배출 등 발전원별 비용과 편익을 동일한 기준에서 비교할 수 있는 자료가 제공돼야 한다.
정부가 제시한 전력수요 전망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메가프로젝트의 전력수요 가운데 실제 투자가 확정된 수요가 얼마인지, 아직 사업계획 단계인 잠재수요가 어느 정도 포함됐는지, 예상한 시점에 실제 수요가 발생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도 검증 대상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
전력수요 전망은 발전설비 규모를 결정하는 출발점이다. 수요가 달라지면 필요한 원전의 규모뿐 아니라 재생에너지와 LNG, ESS, 송전망의 규모도 함께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정부 전망을 고정값으로 놓고 원전의 역할만 국민에게 묻는 방식은 숙의형 공론화의 취지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 특히 원전을 추가로 지을지, 몇 기를 지을지와 같은 핵심적인 정책 선택은 공론화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원전의 역할’을 국민에게 묻는다면 공론화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은 피하기 어렵다.
12차 전기본은 향후 15년간 대한민국 전력수급의 밑그림을 결정한다. 이번 공론화가 이미 설정된 전력수요 전망과 정책 방향에 사회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절차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부가 제시한 수요 전망부터 검증대에 올려야 한다.
원전의 역할을 묻기 전에 전력이 실제로 언제, 어디에서, 얼마나 더 필요한지를 먼저 따지는 것. 그것이 이번 공론화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출발점이라는 의견이 대두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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