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경의 아세안 에너지 워치] 인도네시아 시급한 과제, 발전소보다 전력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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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275kV 송전선 장애로 섬 전역에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6월에도 폭우와 강풍으로 북수마트라의 송전탑 12기가 무너지며 정전이 이어졌다. 인도네시아 에너지·기후 싱크탱크 IESR(Institute for Essential Services Reform)는두 차례 사고가 발전능력 부족보다 송전망의 물리적 구조와 계통 보호, 운영 유연성, 복구능력 등 전력망의 회복탄력성을 점검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송전망 문제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 1기 초반 추진된 '35GW 계획'으로 화력발전 설비가 빠르게 늘었지만 전력수요는 그만큼 늘지 않았고, 자바-발리 계통에는 공급 과잉이 발생했다. 발전설비가 늘어나는 동안 송전망 투자는 더뎠다. 섬과 섬 사이가 멀고 바다와 산지를 건너야 하는 지리 조건도 망 구축을 어렵게 했다. 여기에 재생에너지 자원과 전력 수요가 서로 다른 지역에 있다는 문제가 겹친다. 태양광·풍력·수력 자원은 수마트라, 칼리만탄, 술라웨시, 누사텡가라 등에 분산되어 있는 반면, 전력 수요와 산업은 자바·마두라·발리에 집중돼 있다. 프라보워 정부의 100GW 태양광 프로젝트가 실현되면 송배전 문제는 더 가중될 것이 분명하다.
발전소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기를 필요한 곳까지 보내고, 태양광과 풍력의 변동성을 흡수하며, 장애가 발생했을 때 계통을 신속하게 복구할 수 있는 전력망이 함께 구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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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망 새로 짜는 전력공급사업계획
이 문제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대응이 2025~2034년 전력공급사업계획(Rencana Usaha Penyediaan Tenaga Listrik, RUPTL)이다. 총 투자 규모는 약 1,826억 달러다. 발전설비는 1단계(2025~2029년)에 27.9GW, 2단계(2030~2034년)에 41.6GW를 추가한다.
전력망도 대대적으로 확충한다. 향후 10년간 47,758km의 송전선과 107,950MVA의 변전소를 새로 건설한다. 섬과 섬을 잇는 'Green Enabling Super Grid'도 추진한다. 수마트라, 칼리만탄, 술라웨시의 주요 기간망과 숨바-발리-자바 선로 등을 연계해, 분리되어 있던 지역별 전력망을 단일 계통으로 통합한다는 계획이다.
전선을 넘어 스마트 그리드로
기존 전력망은 애초에 재생에너지를 전제로 설계되지 않았다. 태양광과 풍력은 발전량을 필요에 따라 조절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력을 저장했다가 부족할 때 공급하는 저장장치와 계통을 실시간으로 조절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RUPTL은 배터리저장장치(BESS)와 양수발전을 포함한 10.3GW의 에너지저장 설비를 계획하고 있다.
스마트 그리드 구축도 추진한다. 송전 부문에는 장거리 대용량 전송에 유리한 초고압직류송전(HVDC), 전압과 전력 흐름을 조절하는 유연교류송전시스템(FACTS), 디지털 변전소를 적용한다. 배전망에는 스마트 계량 시스템(AMI), 분산에너지자원관리시스템(DERMS), 고장 시 전력을 자동으로 복구하는 시스템과 스마트 마이크로그리드를 도입한다. 인도네시아가 구축하려는 것은 전선을 더 많이 연결하는 망이 아니라 지능형 전력 시스템이다.
남은 과제는 투자와 실행
문제는 투자자금 조달과 집행이다. 미국 에너지경제·금융분석연구소(Institute for Energy Economics and Financial Analysis, IEEFA)에 따르면 인도네시아가 2025~2034년 송전선과 변전소에 투입해야 할 금액은 약 244억 달러, 연평균 약 24억 달러다. 그러나 국영전력회사 PLN (Perusahaan Listrik Negara)의 2019~2024년 투자 실적은 연평균 약 14억 달러에 그쳤다.
발전설비보다 전력망 구축이 더디게 진행되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투자회수 구조가 취약하다. 발전은 전력구매계약으로 수익이 확정되는 반면, 송전망은 발전사업처럼 개별 사업의 투자비를 직접 회수하는 구조를 만들기 어렵다. PLN 사장에 따르면 송전 투자의 수익률은 약 2~4%이나 PLN의 조달비용은 약 8%에 달한다. 둘째, 그 부담을 PLN이 혼자 진다. 신규 발전설비의 약 73%는 민간 발전사가 사업별로 자금을 조달해 짓지만, 송전망은 PLN이 자체 재무제표로 추진한다. 국제에너지기구도 투자 규모가 커질수록 PLN의 재무건전성과 자금조달 능력이 중요한 제약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셋째, 민간 참여라는 대안이 작동하지 않는다. 송전 사업자는 PLN뿐이고, 민관협력(PPP) 제도는 있지만 적용 사례가 드물다. PwC 설문조사에서 전력 부문 PPP의 가장 큰 장애물로 복잡하고 긴 인허가·승인 절차(39%)와 규제 불확실성 및 투명성 부족(29%)이 꼽혔다.
RUPTL은 재생에너지와 저장장치 확대를 2단계에 집중시키고 있다. 지금부터 송전망과 계통을 준비하지 못하면 그때 건설되는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계통에 제대로 연결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하다는 사실이 곧바로 투자 가능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발전소보다 전력망을 먼저 준비하고, 계획을 실제 사업으로 조속히 이행해야 한다. 인도네시아 에너지 전환의 다음 승부처는 발전소가 아니라 전력망이다.
고영경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연구교수 / 아시아비즈랩 연구소장
[글쓴이 소개]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지역학 석사를, 고려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재무 전공) 학위를 받았다. 10여 년간 말레이시아 현지 대학 및 연구기관에서 조교수와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디지털통상연구센터 연구교수이자 아시아비즈랩 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아세안 슈퍼앱 전쟁》, 《7UPs in Asia》 등이 있으며, 기업 스토리텔러 및 중앙일보 〈마켓 나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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